김유신 자식은 삼국사가 삼국유사에 그 실체가 어느 정도 공개되지만 아들만 실명 공개했을 뿐이요 특히 전자에서는 네 딸을 두었다 했지만 그 넷은 이름도 없고 당연히 행적도 없다.
예서 드는 의문.
김유신 정도 되는 아버지 딸들이 평이한 삶을 살았겠는가?
한데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에는 그 네 딸 이름만이 아니라 그 행적 또한 비교적 소상히 보이는데 예상대로 간단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 네 딸 이름을 진광晉光 신광信光 작광酌光 선광善光이라 해서 첫 부인 령모令母. 소생이라 밝힌다.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김유신 장남 삼광三光과 더불어 모조리 光을 돌림자로 썼다.
이들과 달리 김유신이 환갑에 취한 지소공주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노자의 별칭인 장이長耳만 빼고선 원술元述을 필두로 모조리 元자를 돌림으로 쓴다.
저 영모 소생 네 딸 중 선광善光이 바로 흠운欽運에게서 아들을 두니 그가 바로 마질차다. 원성왕 직계 5대조 할아버지다.
이렇다.
예서 드는 의문은 흠운은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서 죽기 직전 스스로 하는 말이 나는 대왕의 반자半子, 곧 반쪽짜리 아들인 사위라 하는 점이다.
이에 의하면 흠운은 저 당시 태종무열왕 김춘추 사위였다.
저 상장돈장 계보에 보이는 배금裵錦이 바로 김춘추 딸이다.
그렇다면 선광은 첩인가? 혹은 사통인가?
더는 증거가 없다. 다만 내심으로는 네 딸 중 굳이 저 선광만은 이렇다 할 행적이 없어 애초 흠운에게 출가해서 아들 마질차를 낳고는 일찍 죽은 게 아닌가 한다.
이리 되면 선광이 조강지처요 배금이 후처가 된다. 이런 이해가 자연스럽다고 나는 본다.
흠운은 죽기 전 김유신 사위로서 아들 마질차를 두고 후처 배금한테서는 딸을 낳으니 이 딸이 훗날 신목태후로 일컫게 된다.
계보가 이리 정리되면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신라 38대 원성왕 김경신은 김유신 직계 혈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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