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遼史 권72 열전列傳 제10
야율팔가耶律八哥는 字를 오고린烏古鄰이라 하며 오원부五院部 사람이다. 어려서 총명하고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자리서 암송했다.
통화統和 연간에 대대로 업을 닦아 본부本部(오원부) 관리가 되었다가 얼마 안 있어 승진하여 갑살월閘撒狘이 되었다가 이내 추밀원시어轉樞密院侍御로 옮겼다.
송나라 장수 조삼曹彬과 미신米信이 연燕을 침입하자 팔가는 호종하여 공을 세우고 상경유수上京留守로 발탁되었다.
개태開泰 4년(1015), 초치되어 북원추밀부사北院樞密副使가 되고 조금 있다가 동경東京을 유수留守했다.
7년(1018)년, 上이 명하여 동평왕東平王 소배압蕭排押帥한테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케 할 적에 팔가八哥는 도감都監이 되었다.
개경開京에 이르러 크게 약탈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하茶河와 타하陀河 두 강을 건너려 할 적에 고려 군사가 이르니 뭇 장수는 적이 두 강을 넌너게 한 다음에 치자 했지만 홀로 팔가만이 불가하다 하면서 이르기를
「적이 만약 두 강을 건넌다면 필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터, 이는 위험한 방법이다. 만약 두 강 사이에서 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하니 배압排押이 그를 좇았다가 싸움에서 대패했다.
이듬해(1019), 동경東京으로 돌아와 아뢰기를 발해승봉관渤海承奉官은 마땅히 자신이 통솔해야 한다고 하자 황제가 그 의견을 따라 도지압반都知押班을 두었다.
나중에 다타에서의 패전[茶陀之敗]에 따라 사상使相에서 깎여서 서북로도감西北路都監으로 강등되었다가 죽었다.
耶律八哥,字烏古鄰,五院部人。幼聰慧,書一覽輒成誦。
25 統和中,以世業為本部吏。未幾,升閘撒狘,尋轉樞密院侍御。會宋將曹彬、米信侵燕,八哥以扈從有功,擢上京留守。
26 開泰四年,召為北院樞密副使。頃之,留守東京。七年,上命東平王蕭排押帥師伐高麗,八哥為都監,至開京,大掠而還。濟茶、陀二河,高麗追兵至。諸將皆欲使敵渡兩河擊之,獨八哥以為不可,曰:「敵若渡兩河,必殊死戰,乃危道也;不若擊於兩河之間。」排押從之,戰敗績。
27 明年,還東京,奏渤海承奉官宜有以統領之,上從其言,置都知押班。後以茶、陀之敗,削使相,降西北路都監,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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