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일통삼한을 달성하던 무렵 7세기 중후반 신라사에는 흠欽이라는 글자를 선호하는 이름이 유행한다.
김유신 동생 김흠순金欽純(흠춘欽春이라고도 한다)이 있고, 역시 군사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내다가 신문왕 즉위 원년 반란 혐의로 처단된 김흠돌金欽突이 있으며,
또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서 8등 사찬이면서 낭당대감으로 출전해 장렬히 전사한 김흠운金欽運이 있다.
이들 관계를 결론으로 앞서 말한다면 김흠돌은 김흠순의 조카이며, 그런 흠돌과 흠운은 아버지가 같고 엄마가 다른 동부이모同父異母 형제다.
물론 이런 내용, 곧 저들의 관계는 기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화랑세기와 그 족도族圖인 상장돈장上章敦牂에서 드러난다.
김흠순이야 그의 친형이 김유신이니, 그 계보에 대해서는 볼짝이 없지마는 이들 형제한테 보희寶姬와 문희文姬라는 자매가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거니와,
화랑세기를 보면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萬明부인 사이에는 정희政姬라는 딸이 한 명 더 있었다. 막내였다.
이 막내가 달복達福이라는 사람한테 출가하는데, 이 달복 또한 위세가 만만치 아니해서 최고 관위가 3등 잡찬迊飡에 이른다. 5등 대아찬부터 재상이니, 재상을 지낸 사람이다.
김유신-흠순 형제 누이동생 정희는 이런 달복한테 시집가서 맏이로 흠신欽信이라는 딸을 두고 그 아래 남동생으로 흠돌欽突을 둔다.
이 흠돌은 일통삼한 전쟁에서 장군으로 맹활약하지만 훗날 신라 조정을 일대 혼란으로 빠뜨리는 주인공이 된다.
김흠돌의 이런 가족 관계에서 주시해야 할 점이 하나가 더 있다. 당대 최고의 권신들을 삼촌으로 두었다는 점 말고도 태종무열왕 김춘추 정비이면서 문무왕 어머니인 문희, 곧 문명태후文明太后 조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든든한 가문 배경으로 보면 당대에 그를 뛰어넘을 사람이 없었다.
이런 화려한 뒷배경이 출세의 배경이 되었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흠돌은 부인으로 외삼촌인 김유신의 딸 진광晉光을 맞아들인다. 김유신의 사위였던 것이다.
한데 흠돌의 아버지 달복은 여인이 한 명 더 있다. 보개宝蓋라는 여인인데, 미실이 진평왕을 섬겨 낳은 딸이다.
달복은 이 보개라는 공주한테서 아들을 하나 두는데 그가 바로 흠운欽運이다.
달복의 두 여인 보개와 정희는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 그에서 난 자식들이 서출 취급은 아니 당한 것으로 보아 둘 다 정식 부인이었던 느낌이 있거니와, 저 중에서도 정희는 훗날까지 김흠돌의 난 무렵까지도 살아남은 흔적이 있어 혹 보개가 첫 부인이고 정희가 재취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면 흠운이 아무래도 흠돌보다는 형이었을 것 같다. 실제 흠운은 655년에 지금의 영관급 장교로 출전했다 죽었으니, 그때 대락 20~30대였다고 보이는 반면, 흠돌은 화랑세기에 의하면 627년 생이라 흠운이 죽을 때 열아홉살에 지나지 않았다.
둘은 어머니가 달랐지만 같은 흠欽이라는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 이 시대 신라가 본격 돌림자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쓰기도 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흠돌은 혼인 관계가 어떠한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침내 마질차를 만난다.
앞에 첨부한 계보도를 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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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질차] (5) 신목태후의 등장, 싹트는 반란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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