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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막말 어느 번藩의 갈등(3) : 도사번土佐藩 사무라이 최후의 승자

by 초야잠필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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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가 되면 부농이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하고 양반 중 잔반이나 농민으로 내려 앉는 사람이 나오는 등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급무사쯤 되면 무사계급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하급무사는 상황이 달랐다. 

예를 들어 상인이나 부농 중 사무라이로 신분이 상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술한 도사번의 경우 하급무사 중 향사鄕士 계급인 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 1836~1867]는 원래 집안이 상인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유했는데 이 집안 일부가 사무라이 하급 무사 계급으로 신분을 고친 경우이다. 



반면 위 표를 보면 지하낭인地下浪人에 이와사키 야타로라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의 집안이 재미있다. 원래는 도사번 향사로 하급무사 신분이었다는데 집안이 몰락하여 사무라이 신분을 팔아치워 버리고 지하낭인이 된 것이다.

우리로 치자면 양반 족보를 팔아치워버린 경우에 해당하겠다. 

이렇게 도사번에는 상급무사부터 하급무사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무라이가 있었지만 앞에서 쓴 것처럼 상급무사와 하급무사가 메이지유신기에 보여준 반응과 역할은 무척 달랐다. 

도사번의 하급무사들이야말로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하나로 다케치 한페이타, 사카모토 료마, 오카다 이조, 나가오카 신타로, 요시무라도라타로 등이 소위 말하는 "유신지사"가 되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다. 

위 표에 있는 하급무사 중 메이지 유신 이후까지 살아 남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모두 유신 이전에 사망했고 유신 이후에는 오카다 이조 [岡田以蔵, 1838~1865]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후에 메이지 정부로부터 높은 관직을 추증받았다. 

그렇다면 도사번에는 하급무사가 메이지유신기의 최후의 승자일까? 

그것이 아니다. 

도사번의 사무라이 중 메이지유신 최후의 승자는 앞서 말한 몰락 사무라이 지하낭인 이와사키 야타로 [岩崎弥太郎, 1835~1885]였다. 

이와사키 야타로가 누군가 하면 바로 미쓰비시三菱 재벌의 창업자다. 

이와사키 야타로는 메이지 유신 이후 돈을 벌 기회를 잡아 일본 굴지의 재벌로 성장했다. 

그가 도사번 사무라이 중 최후의 승자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메이지유신 직후에 찍은 이와사키 야타로의 사진. 몰락 사무라이의 후신으로 막말에는 지하낭인으로 불리며 번의 온갖 잡일은 다 하고 돌아다니는 처지였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거부가 되어 일약 일본 최고의 재벌이 되었다. 도사번 사무라이 중 최후의 승자는 이와사키 야타로였다.

 

 

*** Editor's Note *** 

 

조선 후기가 되면 부농이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하고 양반 중 잔반이나 농민으로 내려 앉는 사람이 나오는 등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다고 한다...이것이 이른바 조선후기론을 설명하는 아주 일반적인 이해인데, 이 말 뜯어보면 말도 안 된다. 

왜인가? 저런 현상은 비단 조선후기만의 특질이 아니라 역사를 어떤 시대에나, 특히 격변기에는 공통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말하고자 하는 근대로의 혁명은 실상 조선후기가 아니라 예컨대 무신정변기 고려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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