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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말과 소가 세트를 이룬 북위시대 귀인 행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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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교수 관련 글들, 그리고 그에 대한 바로 앞 코리끼표 명나라 만력제 행차와 연속하는 관점에서 북위시대 귀인 행차를 새삼 소개한다. 

북위는 널리 알려졌듯이 북방 선비족이 이룩한 왕조로, 지금의 중국 동북방에서 밀고 내려와 세력을 확장하다 지금의 산서성 북쪽 대동大同에서 통일 왕조를 이룩하고는 이내 우리도 변방에서는 살 수는 없다 해서 낙양으로 천도하고는 중국 북방을 통일한다. 

선비족은 본래 유목 부족이다. 그래서 말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 그들도 느긋한 행차에 쓰는 수레는 소를 썼다. 
 

이런 말이 끄는 수레 행렬은 동아시아에서는 상당히 희소했다. 근대기 이후 유산이라 보아 대과가 없다.

 
말은? 전쟁통에는 당연히 전투에 말을 썼다. 이 전쟁통도 우마 쓰임새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는데, 군량미나 무거운 무기는 모조리 소가 옮겼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전쟁통에도 말과 소는 언제나 세트로 움직였다. 

요새야 중국에 갈 기회가 부쩍 많고 실제 많은 분이 봤겠지만, 박물관에 가면 흔해 빠진 것이 무덤 출토품이라, 무덤을 쓴다는 자체가 돈께나 있는 사람들이라,

그 무덤 껴묻거리 양상을 보면 그 주인공이 생전에 얼마나 멋진 삶을 누렸는지를 미니어쳐 편집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표현하곤 하니 이른바 도용陶俑이 그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북위시대 이런 껴묻거리가 왕청나다. 그런 일일한 사례는 들기도 벅찰 정도이나, 얼마전 국내 박물관에서도 소개한 북위시대 무덤 도용들을 소개한다. 

국립부여박물관과 한성백제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한·중 국제교류전 “북위”가 2021~22년 두 기관에서 순차로 열렸으니, 이 자리에는 중국에서 뤄양박물관·다퉁시박물관·후룬베이얼박물원 소장 북위시대 유물 97점이 선보였다.

여기에 선보인 우마차 관련 유물은 두 건이라 일부러 이리 골랐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는 북위 대동 시절 무덤 출토품이고, 다른 하나는 낙양 도읍 시절 무덤 유물들이다. 

첫째 대동시 위창자위안[어창가원御昌佳圓] 북위묘 출토 도용들이라, 이를 설명하기를 그 도용들은 기마용騎馬俑·남녀 시종·마차·우차 그리고 춤추는 인물들이라 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랬다. 
 

대동시 위창자위안[어창가원御昌佳圓] 북위묘 출토 도용

 
2013년 발굴된 북위시대 무덤으로 귀족이 성대하게 행차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소와 말수레 앞으로 말을 탄 인물이 길을 인도하며 수레 양쪽과 뒤에는 시종들이 수행한다. 남녀 시종 도용들은 모두 전형의 북방 선비인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수군풍모垂裙風帽에 좌임左衽의 상의上衣를 걸쳤다. 여자 시종은 좁은 소매에 긴 치마를 입었으며 남자 시종은 폭이 좁은 바지를 입었다.  
 
이 중에서 지금 우리네 관심은 우마차이니 그 부문을 보면 마차가 앞장서고 우차가 따른다. 이에서도 말이 우차를 이끈다. 나아가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은 당연히 말을 탔다. 
 

 
앞 사진에서 보듯이 말을 탄 사람이 행렬을 인도한다. 
 

 
이 앞 사진이 마차라고 소개한 부분이다. 
 

 
이 앞 사진이 바로 우차다. 여기에 무덤 주인공이 탔다.

양쪽에는 시종들이 따르며 춤추는 사람들이 춤을 추며 흥취 혹은 권위를 돋군다. 
 

 
한데 이에서 소개한 마차가 과연 마차인지는 생각할 대목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저 무덤 발굴 당시 저들 도용이 출토하는 양상을 살펴야 하는데, 지금은 살피지 못한다. 우차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 낙양시 양기묘楊機墓 의장 행렬 도용을 본다. 무덤 주인공 양기(474~534)는 북위에서 탁지상서度支尙書라는 재상급 직위를 역임한 고위직이다. 

뤄양시 서남쪽 15킬로미터 지점 의양현宜陽縣 마요촌馬窯村이라는 데서 발굴됐다. 
 

 
보다시피 앞쪽 대동시대랑 비교할 때 사뭇 양상이 달라졌음을 본다. 뭐랄까? 굉장히 화려해졌다 할까? 아무래도 중국 한漢문화 짙은 영향이 묻어난다. 

그에 대한 박물관 안내판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도용들은 비례가 좋아지고 옷차림의 표현도 섬세해졌다. 한식漢植 옷차림의 영향을 받은 소매가 넓은 옷을 입은 여자 도용과 큰 소매의 붉은 비단옷을 입은 문관 도용뿐만 아니라 낙타, 서역인의 모습을 한 도용 등도 함께 확인되어 유목민과 중국인, 서역인이 공존했던 북위 후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딱 봐도 중국풍이 완전히 가미됐음을 본다. 
 

 
예서 관건은 주인공이 타는 수레. 역시 소가 끈다. 생긴 양상을 보면 황소 같다. 
 

 
역시 말을 탄 무사들이 호위 인도함을 본다. 
 
결국 전통시대 행렬은 말과 소가 세트를 이루어 움직였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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