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출현 이후 한국고대사학계, 특히 신라사학계에는 ‘화랑세기 트라우마’에 견줄 수 있는 현상이 있다고 했거니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용수龍樹-용춘龍春 문제다.
두 이름은 김춘추 계보를 논하면서 그 아버지로 등장하는 표기로,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이 두 표기를 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뜻밖에도 이 둘이 다른 사람으로 드러났다. 한데 이에 놀란 사람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 두 표기가 등장하는 맥락을 다시 살피니, 정말로 딴 사람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집필진이 용수-용춘을 딴 사람으로 인식했느냐 하는 논란이 있다. 나는 적어도 삼국사기는 그랬다고 본다.
하지만 집필진이 그렇게 인식했건 아니했건, 이건 중요하지않다. 용수와 용춘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드러난 과정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저록한 용수와 용춘은 다른 인물이었지만, 그 발견을 유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화랑세기였다.
간단히 말해 화랑세기를 보고 나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관련 기록을 보니 두 이름은 딴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이에서 어떤 ‘화랑세기 강박’이 작동하는가?
등신이 아니고서는 이제는 용수 용춘이 같은 인물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명백한 사실을 자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갖은 억측과 억설을 갖다대면서 용수와 용춘이 같은 사람이라 한다.
나는 이를 화랑세기 트라우마로 규정한다.
이 문제를 인정하면 그 자리서 화랑세기 진본론자로 낙인 찍혀 학계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말하건대 용수와 용춘은 딴 사람이다. 이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폭로한 것이지 화랑세기가 그리한 것은 아니다.
(2016. 12. 19)
#화랑세기 #화랑세기논쟁 #화랑세기진위논쟁
*** 아래 첨부기사를 참조하면 도움이 더 될 것으로 본다 ***
용수龍壽-용춘龍春이 다른 사람인 빼도박도 못할 근거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5) 테크노크랏의 전성시대 (0) | 2023.12.20 |
---|---|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4) 자격루 제작과 출세길 (0) | 2023.12.19 |
말과 소가 세트를 이룬 북위시대 귀인 행차 (0) | 2023.12.19 |
소가 끌다 코끼리로 교체된 명나라 황제의 수레 (0) | 2023.12.19 |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3) 걸핏하면 뇌물죄로 걸려든 광물 전문가 (0) | 2023.1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