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점은-.
밀교 고승들 이야기다. 이들의 행적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신라의 경우 밀교가 중국에 전해지던 초창부터 이에 참여하여 경전의 한역과 밀교의 중국 토착화에 기여한 정황이 매우 확실하다.
일본에서 밀교진언종이 전하는 진언종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마지막에 홍법대사弘法大師 공해空海[구카이]가 있다. 구카이의 스승인 혜과惠果가 바로 앞에 있다.
혜과가 구카이에게 밀교 불법을 전하고 그것을 받아 구카이는 일본에 진언종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다. (뭐 일본에서 보는 해법이니 이를 시비할 생각은 없다)
혜과 앞에 여섯 명이 더 있다. 가장 앞의 용맹은 대승불교 용수와 같은 사람이다. 밀교도 시조는 용수이다.
그 다음 용지까지는 인도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금강지와 불공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사람들로 이들이 중국 밀교의 문을 열었다.
불공의 제자가 혜과이며 선무외와 일행은 이 전수도에서 약간 비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중 중국인은 일행과 혜과이며 홍법은 일본인, 그리고 나머지는 서역인이거나 인도인이다.
일본으로서는 홍법대사=구카이를 이 전수도 말단에 두고 싶겠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구카이는 5개월짜리 단기 방문승려 신세라 이 전수도에 들어가기 솔직히 역부족인 사람이다.
혜과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혜과는 그렇게 제자가 많았다고 한다) 구카이는 죽기 바로전에 일본이라는 먼 나라에서 찾아왔기에망정이지 아마 그렇지 않았으면 기억도 못했을 것이다.
이 전수도에서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들어온 첫 세대가 금장지와 불공인데 (이 둘도 서로 사제관계이다) 금강지가 인도로 들어온 것이 서기 719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 즈음 혜초가 금강지를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따라서 혜초는 중국에 밀교가 처음 들어와 착근도 제대로 못한 시절에 이에 투신 한 사람이다. 신라불교가 당시 국제수준에 얼마나 동기화해서 움직이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실례가 될 것이다.
혜초는 금강지 제자가 된 후 몇년 안 되어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다.
이 인도로의 여행은 금강지가 어렌지 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아는가? 금강지의 인도인제자 불공도 두 번에 걸쳐 인도로 환국하여 밀교 경전을 입수하는 구법 여행을 보냈기 때문이다.
혜초도 같은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혜초는 인도로부터 귀국한 후 이번에는 불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와 함께 경전 번역에 착수했다. 놀라운 것은 이 시점은 아직 밀교 경전인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한역되지도 않았던 때이다. 혜초는 중국 밀교 전통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다.
이후 많은 신라 승려가 밀교에 투신한 것이 기록에 잡힌다. 이들은 한번 들어오면 10년, 20년을 머물렀고 대부분 중국에서 입적했다. 신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신라밀교의 사실상 개조는 혜일로 잡는다. 혜일은 일본의 쿠가이처럼 혜과의 제자이다. 물론 구카이처럼 5개월 짜리 날림 제자는 아니고 혜과 밑에서 20년 가까이 수련한 정식 제자였다.
그런데 혜일은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신라밀교의 사실상 개조가 되었다. 신라는 일본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밀교의 동아시아 정착사에 크게 기여했지만, 모두 중국에서 입적하여 사라지고 신라로 돌아와 착근 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혜일이 신라로 돌아온 해는 서기 805년 전후로 본다. 혜일의 시대에는 이미 당나라에서는 기대할 것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건 혜일은 신라로 돌아와 착근했다.
혜일과 구카이가 다른 점은 구카이는 5개월짜리 날림 유학생이었지만 일본으로 돌아가 그의 제자는 엄청나게 불어나 일본사 주축이 되었다는 점이다.
혜일은 아마도 일본에서는 훨씬 유력한 밀교승려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혜과의 6대 제자의 하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6대 제자의 말석에 구카이를 끼워놓는데, 역부족이라 본다), 그의 뒤를 잇는 사람은 거의 끊어져 사라졌다.
이런 사례는 학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결국 제자가 스승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것이다.
스승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가 아닌가는 제자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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