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传에는 서기 641-691년까지 인도로 간 스님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691년에 완성된 책이다.
이 책에는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7세기에 인도로 간 신라 스님을 일곱분 기록해 두었다.
그 중 삼국통일 전 인도로 출발한 것이 확실한 신라 스님을 보면 다음과 같다.
https://zh.wikisource.org/zh-hans/%E5%A4%A7%E5%94%90%E8%A5%BF%E5%9F%9F%E6%B1%82%E6%B3%95%E9%AB%98%E5%83%A7%E5%82%B3/%E5%8D%B7%E4%B8%8A
阿离耶跋摩者,新罗人也。以贞观年中出长安,之广胁,〈王城山名。〉追求正教,亲礼圣踪。住那烂陀寺,多闲经论,抄写众经。痛矣归心,所期不契。出鸡贵之东境,没龙泉之西裔。即于此寺无常,年七十馀矣。〈鸡贵者,梵云矩矩吒医说罗。矩矩吒是鸡,医说罗是贵,即高丽国也。相传云彼国敬鸡神而取尊,故戴翎羽而表饰矣。那烂陀有池,名曰龙泉。西方唤高丽为矩矩吒医说罗也。〉
慧业法师者,新罗人也。在贞观年中往游西域。住菩提寺,亲礼圣踪。于那烂陀,久而听读。净因检唐本,忽见《梁论》下记云:“在佛齿木树下新罗僧慧业写记。”访问寺僧,云终于此,年将六十馀矣。所写梵本并在那烂陀寺。
玄太法师者,新罗人也。梵名萨婆慎若提婆。〈唐云一切智天。〉永徽年内取土蕃道,经泥波罗,到中印度。礼菩提树,详检经论。旋踵东土,行至土峪浑,逢道希法师,覆相引致,还向大觉寺。后归唐国,莫知所终矣。
玄恪法师者,新罗人也。与玄照法师贞观年中相随而至大觉寺。既伸礼敬,遇疾而亡,年过不惑之期耳。
이 분들이 어떤 길을 취하여 서역으로 갔는지 확실치 않지만, 참고로 이들이 모델로 삼았을 현장의 "대당서역기"의 경로를 보면 아래와 같다.
P.S. 1) 기록된 것만 저 정도이니 아마 더 많은 신라인이 6세기 당시 저 행로를 누볐을 것이다.
P.S. 2) 정관 연간에 인도로 출발했다는것이 얼마나 빠른 시기인가 하면, 현장이 서역에서 장안으로 귀환한 해가 645년, 정관 19년이다.
P.S. 3) 신라 승 중 일부는 현장이 장안으로 귀환하기 전에 이미 인도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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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깃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 속 인물: 고구려인일까?
*** Editor's Note ***
서역으로 서역으로 물밀듯 몰려간 신라인들
7세기 신라엔 서역 바람이 노도처럼 일었다.
무엇이 이 한류운동을 추동했을까?
동시대 고구려 백제가 하지 못하고 하지 않은 그 운동은 누구가 무엇이 추동했을까?
나는 화랑이라 본다.
화랑과 서역바람이 일치한다
명산대천으로 그들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대세 구칠 같은 사람이 등장한 그 무렵 신라인들이 서역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설계두도 이때 사람이다.
7세기는 한민족사 가장 빛나며
한민족사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일통삼한은 요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발견한 신라의 위대한 승리였고
그 월계관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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