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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명태, 명천 사는 태씨가 잡은 물고기라 해서 얻은 이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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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도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손 가는 대로 써내려간 글 모음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7권 / 춘명일사春明逸史에 보이는 일화다. 미리 말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얼려서 말린 명태가 황태다. 뉘리끼리한 빛깔을 띠는 까닭이다.


명태明太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漁父 중에 태씨太氏 성을 지닌 이가 있어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廚房 일을 보는 아전을 통해 도백道伯께 드리니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다 해서 물고기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고 다만 “태 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옵니다”고 할 뿐이었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했다. 이로부터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북어北魚라 불렀다.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다”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이 들어맞은 셈이다.

내가 원산元山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인 모습을 보았는데, 마치 오강五江(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현 (역) | 2000

 

이 무대가 된 명천明川은 지금의 함경북도 남쪽 해안지대다. 따라서 임하필기를 쓰던 19세기만 해도 명태는 동해안, 그것도 원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북한 동해안에서 집중 포획되었음을 본다. 그 별칭이 북어北魚인 까닭이 바로 그 포획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임하필기가 말하는 저 사건, 곧 이것이 무슨 물고기냐 블라블라한 일이 있은 때는 알 수 없다. 이유원 당대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보다 훨씬 이전 어느 시점에 있었던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그보다 이유원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유득공柳得恭(1748~1807)이 명태 이야기를 채록한 데서도 단적으로 본다.

이 물고기 이름이 없었다는 증언을 어찌 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애초 명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민간 어원설에 기초해 저런 일화가 생겨났을 것으로 본다. 

민정중閔鼎重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생몰년은 1628~1692년이다. 따라서 300년은 대강 때려잡아 말한 것이며 실제는 200년 정도다. 이 민정중이 남긴 글에 북어 이야기가 있었던 듯하다. 《노봉집老峯集》 《노봉연중설화老峯筵中說話》 《임진유문壬辰遺聞》 《연행일기燕行日記》 같은 글이 남았으니 이 중에 북어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각중에 명란젓이 땡긴다.

 

이 명태 이야기는 조선 시대 글에 더러 보이는데 앞서 말한 유득공의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4권에도 북어北魚 라는 표제로 보인다. 


한 곳에서 생산된 뒤에 팔도로 두루 퍼지는 것은 바로 북해北海의 명태明太다. 이 물고기는 수가 매우 많은데 북어北魚라 불린다. 몸은 길고 비늘은 가늘며 색은 조금 검다. 얼린 것이 맛이 좋고 반 건조한 것도 좋은데 오래 건조된 것은 맛이 점점 싱거워진다. 알은 젓갈을 담글 수 있는데 명란明卵이라 한다.

생선 장수들이 덕원德源의 원산에 모여들었다가 짐바리를 남쪽 지방으로 향하는데, 철령 이남 산골짝 안에 재갈들이 나란하고 방울이 울리며 끊임없이 죽 이어지니 모두 이 물고기다. 팔도 점방의 반찬과 술안주로나 황량한 마을에서 손님을 접대하거나 푸닥거리할 때 이 물고기를 쓰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그 쓰임새가 넓다.

이 물고기는 함흥 이북에서 나니 고려인들은 그 맛을 보지 못한 듯한데 여진이 독점한 탓이다. 성조聖朝(태조 이성계)에 이르러 함경도를 개척하면서부터 백성들이 그 이로움을 누리게 되었다.

살펴보건대 《설문해자》에 “사魦·노䲐·패䰽·역鱳·국䱡·첩鯜 등은 낙랑樂浪에서 나고, 우어鰅魚는 낙랑의 동이東暆에서 나며, 분魵·면鮸은 예薉의 야두국邪頭國에서 나온다”고 했다. 예薉는 예濊이고, 야두국은 낙랑 속현인 야두매邪頭昧인 듯하다. 아홉 가지 물고기가 모두 우리나라의 물고기이지만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민어民魚가 면鮸이라는 것뿐이고, 나머지는 알 수 없다. 북어는 어떤 물고기인지 모르겠다. 《이아爾雅》에 조예가 깊은 자를 기다려 볼 뿐이다.

내가 포천을 다스릴 때 내각 동료에게 부친 시에 “담뱃갑에 서초 없어 부끄럽지만, 밥상에 북어 올라 기쁘네.[縱羞盒裏無西草 且喜盤中有北魚]”라고 했으니 포천은 북로北路(함경도)의 첫 역참이기 때문에 이 물고기를 많이 매매한다. 담배는 바로 관서의 금사연金絲煙인데, 현달한 관리가 아니면 계속 피울 수 없다. - 뒤에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를 살펴보니 북어는 처음에 조鮡라는 글자로 되어 있었다. 또 들으니 북쪽 지방 사람들이 명태라고 하는 것은 여진 말이라고 한다. -

 

[주-D001] 원산圓山 : 함경도 덕원부德源府에 있던 진명현鎭溟縣의 옛 이름이다. 지금은 원산元山이다.


[주-D002] 사 …… 나오고 : 사, 노, 패, 역, 국, 첩은 각각 상어, 농어, 복어, 자주복, 쇠물돼지, 납자루에 해당한다.


[주-D003] 우어는 …… 나오고 : 《해동역사》 〈물산지2〉의 어류 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우鰅는 《집운集韻》에, ‘엄우䲓鰅는 물고기 이름으로 낙랑에서 난다.’ 하였고, 《초사楚辭》 〈대초大招〉의 ‘우용鰅鱅은 단호短狐이다.’라고 한 곳의 주에는 ‘우용은 단호의 종류이다.’ 하였고, 보주에는 ‘모양이 이우犁牛와 같이 생겼다.’ 하였으며, 곽박郭璞은 말하기를 ‘우어鰅魚는 문채文彩가 있다.’ 하였고, 《사군지四郡志》에는 말하기를 ‘지금 세속에서는 수우水牛라고 하는데, 그 가죽에는 무늬가 있어서 신발을 만들거나 말안장을 장식할 수 있다.’ 하였다.”


[주-D004] 분 …… 나온다 : 역시 《해동역사》의 위의 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분魵은 《이아》 〈석어釋魚〉에 나오는 분하魵鰕의 주에 ‘예야국穢邪國에서 난다.’ 하였고, 소疏에 ‘분어魵魚는 일명 하鰕라고 한다.’ 하였으며, 《정자통正字通》에는 ‘하는 수충水蟲으로, 먹을 수가 있다.’ 하였으며, 《자전字典》에는 ‘하는 강과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있다.’ 하였다. 그러니 예야두국薉邪頭國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므로, 《설문》의 말은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하大鰕의 종류이다. 면鮸은 《정자통》에 ‘석수어石首魚를 면이라고 한다.’ 하였다. 지금 대·소 두 종류가 있다. 세속에서는 그 가운데 큰 것을 민어民魚라고 하는데, 면鮸과 민民은 음이 서로 비슷하다.”

[주-D005] 서초西草 : 평안도 삼등三登·성천成川 등에서 생산되던 품질이 좋은 담배이다. 《경도잡지京都雜志 다연茶烟》
ⓒ 한국고전번역원 | 김윤조 (역)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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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중에 조명치 차려 놓고는 사방팔방 방방 뜨는 창일이가 생각나서 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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