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전공 A 교수의 목은 이색에 관한 책을 붙잡고 연짱 두세 시간 동안 본문 280쪽 중 120쪽을 독파했다.
중간 감상을 적는다.
1. 이색은 최치원의 복사판이다. 필자가 말하는 이색은 삶이 내가 일필휘지로 탈초하여 신라사학보인가 한국고대사탐구를 통해 공간한 '황금방 최치원의 비애' 그 복사판이다.
최치원이 그러했듯이 이색 역시 화려한 금뱃지를 무기로 세상을 경영하고자 고국에 돌아왔지만, 세상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경륜이 아니라 외교문서 수발에 지나지 않았다.
최치원은 쏟아지는 중놈들 전기 써달라는 청탁을 견디지 못하고 가야산으로 들어가서는 아무도 몰래 죽어버렸다.
마찬가지로 화려한 옥스브리지 하버드예일 장학생 출신 이색에게 권력이 요구했던 것은 너는 외교 문서나 짓고, 그거 데스킹이나 하고 자빠져라 이것이었다.
2. 역시나 역사는 현대 역사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이 책을 통해 적지 않이 고려사와 이색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계발했지만, 역사를 보는 진정한 안목, 비록 그것이 김태식의 안목에 지나지 않으나, 역사와 직접 맞다이를 쳐야 한다.
그 역사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그리고 목은집과 동의어는 아니겠지만, 역사는 이들과 내가 직접 대면해서 얻은 결론이라야지 현대 역사가의 눈을 통해 보는 역사는 그 프리즘이 그에 함몰할 가능성이 다대하다.
3. 그런 까닭에 내가 항용 주장하듯이 논문이나 책부터 읽게 하는 역사 교육 방식은 혁파해야 한다. 내가 고려사를 교육한다면 나는 키딩 선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분야 논문, 그 분야 책은 씹어버리라 할 것이다.
4. 이런 여러 한계를 노정했음에도 이 책은 비교적 노작이다. 새로운 연구방식과 이를 위한 원전과의 독대를 시도한 흔적을 곳곳에 보인다는 점이 그러하다.
다만, 그런 새로운 시도들 속에서도 역사를 보는 안목은 여전히 보수적이며 전통적이다. 나 같으면 저리 안 쓴다. 다 엎어버린다.
필자는 나름대로 기존 신진사대부 대 보수친원파의 대립각으로 설명하는 고려말 조선초 역사상에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제시하며 그것을 극복하려 했지만, 내 보기엔 여전히 전통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5. 같은 맥락에서 과연 정치 투쟁이 사상에 의해서 갈라지느냐를 면밀히 보아야 한다. 사상인가?
현대 정치판에서 무수히 보지 않았는가? 고려를 지키려 했고, 혹은 그 반대편에서 조선을 세우려 한 친구들이 새로운 사상, 예컨대 성리학으로 무장했기 때문인가?
이 구도로는 전연 정몽주와 하륜, 그리고 권근을 설명하지 못한다. 하륜은 철저히 배제되었다가 이방원과 결탁하는데, 그 둘을 잇는 고리가 어찌 사상이리오?
사상보다는 이해득실이다. 이 점을 역사학도들이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이 이해득실로 무수한 사람들이 갈라선다.
죽마고우조차 등을 돌려 비수를 꽂아버린다.
이 점을 망각하면 역사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201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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