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권58 지志 권 제12 지리地理 동계東界 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 선화진宣化鎭 항목을 보면 이른바 윤관 9성城에 대한 아래와 같은 기술이 있다.
옛날 역사를 살펴보면, 9성 땅은 오랫동안 여진이 기거하던 곳이다. 예종 2년(1107)에 원수元帥 윤관尹瓘·부원수副元帥 오연총吳延寵에게 명하여 병사 17만 명을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군사를 나누어 그 땅을 경략하였다. (중략)
이에 여진은 그 근거지를 잃어 보복하기를 맹세하고 먼 곳의 추장까지 끌어들여 해를 거듭하여 쳐들어오니 우리 병사도 목숨을 잃은 자가 역시 많았다. 또 땅을 개척하여 이미 넓으니 9성 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여진이 자주 울창한 수풀에서 매복하였다가 왕래하는 자를 노략질하니 국가에서도 병사의 조달이 많아져 전국이 소란스러워졌다.
〈예종〉4년(1109)에 여진 역시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요청하니 이에 길주로부터 시작하여 9성의 전투 장비·군량을 내지內地로 거두어 들였고, 마침내 숭령崇寧·통태通泰·진양眞陽 세 진鎭 및 영주·복주 성을 철거하였다. 또 함주·웅주 및 선화진宣化鎭 성을 철거하고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역사를 볼 때 나는 항용 돈! 돈! 돈! 을 외치라 했다.
9성 경영은 왜 실패했는가? 결국 돈 때문이다. 돈 없이 무슨 식민지를 개척하며, 돈 없이 무슨 식민지를 경영한단 말인가?
저 9성 정벌에는 첫째 돈이 너무 많이 들었고, 둘째 그 경영에도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돈 문제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그 어떤 역사도 앙코 없는 찐빵이다.
이걸 끌어엎은 것이 조선 세종이다.
이 윤관 9성이 실패한 원인을 궁구하고 그 대비책까지 같이 들고가서는 마침내 식민지 경영까지 성공한 이가 세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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