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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제3차 고려 막부정권] (5) 금오대와 도정서, 김훈 막부의 양대 기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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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씹은 표정의 김훈(오른)과 최질(왼).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캡처

 
그랬다. 이번 쿠데타 주역들은 순진했고, 쿠데타 성공 이틀 만에 막부를 만든 것으로 보아 나름 성공 이후 그림까지는 어느 정도 그린 듯하지만, 여러 모로 미숙했다.

왕도 그대로 두었고, 문관들도 평소 밉보인 두 놈만 골라서 흠씬 패고는 유배보내는 것으로 땡쳤다. 

그네들이 이렇게 난을 일으키게 된 빌미를 고려사 찬자들은 영업전永業田이라 해서 군인들한테 배분된 권리를 뺏어다가 문관들한테 나눠준 데 있다 했지만, 그것이 직접 도화선이 되기는 했겠지만, 불만은 훨씬 더 원초적이었다. 

고려는 건국 이래 문관이 특히 비상시에는 무관, 개중에서도 총사령관을 겸했으니, 이런 일이 어찌 군인들이 불만이 없겠는가? 그래서 김훈金訓과 최질崔質은 정권을 잡자마자 이를 거꾸로 쳐서 상참常參 이상 무관武官은 모두 문관文官을 겸하게  할 것을 주청해[請武官常參以上皆兼文官] 관철한다.

이 상참은 글자 그대로는 조정 회의에 상시 참여할 권리가 있는 관리를 말하는 것으로, 아마 6품인가 7품 이상 관리를 말할 것이다. 그런 권리가 있는 공무원을 상참관上參官이라 했으니, 내가 상참관인가 아닌가는 천양지차가 났다. 

1세기 지난 뒤의 증언이기는 하지만 고려사절요 인종仁宗 9년, 1131년 3월 7일 갑진甲辰 조에 이르기를 

왕이 제서制書하기를 ‘문관 상참常叅 이상과 한림翰林·사관史館·국학國學·보문각寶文閣·식목式目·도병마사都兵馬使·영송도감迎送都監·행영녹사行營錄事·군후원軍候員, 무관 4품 이상은 각각 봉사封事를 올려 국가의 중요사안의 이해에 관해 말하라’고 했다”

하거니와, 이에서 보듯이 상참인가 아닌가는 권리가 반딧불과 번갯불이었다. 
 

고려거란전쟁 캡처

 
한데 이 인종 기록에서 주목할 대목은 문관으로 상참이라면 6품 이상인가 인데 봉사를 올리는 조건에 무관은 4품 이상만 주었다고 했으니, 같은 급수라 해도 문관인가 무관인가는 차별이 엄청났다. 

또 고려사 권75 지志 권 제29 선거選擧3 전주銓注에 이르기를 “목종穆宗 9년(1006) 4월에 조서詔書하기를 “문반文班 상참常參官 이상은 각각 재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감당할 만한 자 1명씩을 천거薦擧할 것이며, 천거 받은 자가 마땅한지 아닌지를 보아서 〈천거한 자를〉 상주거나 벌주어라’고 했다” 하거니와, 관리 추천권도 문반, 것도 상참관 이상한테만 주었음을 본다.

뒤이어 현종顯宗 즉위년 7월 20일에는 문관文官으로 상참常叅 이상인 관리들한테 각각 봉사封事를 올려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직언하게 했다 하니, 무관은 아예 자격조차 없었다.

그러니 이런 차별에 얼마나 무관들이 열이 뻗쳤겠는가? 

당시 문반과 무반은 어떤 자리에 갈 수 있느냐도 달랐는데, 상참常參 이상 무관武官은 모두 문관文官을 겸하도록 했다는 말은 간단히 말해 종래에는 문관만 가게 되어 있는 자리에 무관도 가게했다는 뜻이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김훈과 김질은 쿠데타 성공 불과 이틀 뒤에 가장 먼저 그런 까닭에 이런 개혁 조치를 통해 적어도 무관들이 문관과 같은 권리를 지니게끔 제도화해 버린 것이다. 

나아가 같은날 행정기구 개편에도 착수해 어사대御史臺를 혁파하고 금오대金吾臺를 창설함과 동시에 삼사三司를 혁파하고 도정서都正署라는 기구를 설치한 것이다.

이 금오대와 도성서가 바로 막부였으니, 박정희 집권 초기의 국가재건최고회의이며 전두환 집권 초기의 국보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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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고려 막부정권] (4) 쿠데타 이틀 만에 막부를 만든 김훈과 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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