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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문화재 이전 복원의 새로운 시도 판교박물관

by taeshik.kim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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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전 복원의 새로운 시도 판교박물관
송고시간 2012-12-03 15:55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8년 1월 22일. 한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성남 판교 신도시 건설현장 한복판에서 난데없는 '비닐하우스 발굴설명회'가 열렸다.

한국토지공사(지금의 LH) 판교사업단이 분당구 판교동과 삼평동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기 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뢰해 한겨울에는 비닐하우스까지 치고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성백제시대 석실분 7기와 고구려 석실분 2기를 합친 삼국시대 무덤 9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 무덤은 구조가 잘 남았던 데다 무엇보다 이런 자료의 희소성 때문에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비닐하우스 발굴


 
하지만 이럴 경우 신도시 건설안 자체가 대폭적인 변경이 불가피한 데다 보존 이후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그리고 누가 관리해야 하느냐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 그리고 시행자가 적절한 선에서 타협했다. 신도시 예정지 한 곳을 역사공원으로 만들고, 거기에 박물관을 지어 이들 고분을 이전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박물관은 LH에서 지어 성남시에 기부 체납하기로 했다.

내년 3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3일 임시로 개관한 판교박물관은 바로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설중 발굴



이미 발굴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신도시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판교신도시 한쪽의 판교역사공원에 자리 잡은 판교박물관은 규모가 크지 않다. 

대지면적 4천892㎡에 건축면적 975㎡, 연면적 1천449㎡의 지하 1층 지상 1층의 아담한 사이즈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옮겨온 고분 9기가 이미 각자 자리를 튼 박물관 내부는 꽉 찬 느낌에 산뜻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여타 국내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유적의 실물, 그것도 수량이 9기에 이르는 삼국시대 고분을 발굴 상태 그대로 맛본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준다. 

사실 이런 현장 박물관이 국내에서 썩 드물지는 않다.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이나 부산 동래 복천박물관, 그리고 고령 대가야박물관에도 발굴 고분을 전시한다. 

하지만 다른 박물관의 고분은 모형이거나 이전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원형 훼손이 이뤄졌다.
 



실제 무덤을 옮겨 놓았다고 해도 그 수량은 1-2기에 지나지 않은 데다, 그것을 하나하나 해체한 '조각' 형태로 옮겨다가 다시 쌓아올린 형태라는 점에서 발굴 당시 무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고 하기는 힘들고 다양한 무덤 구조를 알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렇지만 판교박물관은 이들과는 전연 다른 시도를 했다. 무덤을 통째로 떠서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이 일을 담당한 문화재 수리보존전문업체 서진문화유산연구원의 김선덕 소장은 "국내 문화재 이전 복원의 전범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판교 석실분을 이전했다"면서 "바닥을 제외한 고분을 그대로 떠서 옮기기 위해 100톤짜리 크레인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온통 돌더미인 석실분 벽체는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땅에서 퍼내서 옮겨왔다는 것이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백문화재연구원 서영일 원장은 "발굴조사 완료와 더불어 사라지는 유적이 안타깝기만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현장에 보존하는 유적이라고 해도 원형 훼손은 필연적이었다"면서 "판교신도시 고분 이전과 같은 문화재 보존방식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taeshik@yna.co.kr 



이 소식은 문화재청 발간 잡지에 다시 조금은 자세히 다뤄졌다. 

 
문화재 이전 복원의 새로운 이정표‘판교박물관’
작성일 2013-01-14

성남 분당 신도시 한복판에 공립박물관이 최근 문을 열었다. 분당구 판교동 499 일원에‘판교역사공원’이라는 공원지구가 있고 그곳에 ‘판교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12월 3일에 임시 개관 하고 오는 3월에 정식으로 문을 연다. 

건축 공사비 76억 원을 포함해 박물관 조성에 들어간 총사업비는 102억 원. 요즘 웬만한 공립박물관 건립비용에 견주어도 결코 크지 않은 사업비다. 경부고속도로가 가로 지르는성내미육교옆에자리잡은이박물관은부지면적이4천892㎡ 에 지상·지하 각 1층(전체 면적 1천449㎡)으로 규모가 아담하다. 
 

비닐하우스 발굴



지금은 관리권과 소유권 모두 성남시로 넘어갔지만 이를 건립한 주체 는 주변 판교신도시 사업시행자인 LH다. 신도시 건설과정에서 실시 한 발굴조사 결과 출현한 백제와 고구려 고분을 문화재청과 문화재위 원회가 보존해야 한다고 하니, LH가 이를 옮겨 전시하기 위한 공간 으로 마련한 곳이 바로 판교박물관이다. 

신도시 조성공사 당시 판교 에서는 석기시대 주거지, 삼국시대 고분군, 조선시대 주거지와 분묘 등 각종 유적 120기가 발견됐다. 한성백제와 고구려 석실분 13기도 확인됐다. 판교박물관에는이중에서도 삼국시대 석실분을 전시한다. 이들 중에서도 4~5세기 무렵에 만들었다고 간주하는 9기를 박물관 내부로 이전·복원한 것이다.  

이들 고분이 필자에게 주는 상념에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2008년 1월 22일. 한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성남 판교 신도시 건설현장 한복판에서 난데없는‘비닐하우스 발굴설명회’가 열렸다.

지금은 LH 로 통합한 한국토지공사 판교사업단이 분당구 판교동과 삼평동 일대 에 신도시를 건설하기 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뢰해 한겨울에 비 닐하우스까지 치고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성백제시대 석실분 7기와 고구려 석실분 2기를 합친 삼국시대 무덤 9기를 발견한 것이다.

이날 질퍽거리는 현장을 둘러보며 나 또한 찬탄을 금치 못한 기억이 생생하다. 
 

비닐하우스 설명회




이들 무덤은 구조가 잘 남았던 데다 무엇보다 자료의 희소성 때문에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럴 경우 신도시 건설안 자체가 대폭적인 변경이 불가피한 데다 보존 이후 그것을 어 떤 방식으로 어떻게, 그리고 누가 관리해야 하느냐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 그리고 시행 자가 적절한 선에서 타협했다. 신도시 예정지 한 곳을 역사공원으로 만들고, 거기에박물관을지어이들고분을이전복원하기로한것이다. 

판교박물관은 이렇게 해서 들어선 것이다. 주변은 이미 발굴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신도시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상태다.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옮겨온 고분 9기가 이미 각자 자리를 튼 박물관 내부는 꽉 찬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여타 국내 박 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유적의 실물, 그것도 수량이 9기에 이르는 삼 국시대 고분을 발굴 상태 그대로 맛본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런 현장 박물관이 국내에서 썩 드물지는 않다. 김해 대성동 고 분박물관이나 부산 동래 복천박물관, 그리고 고령 대가야박물관에도 발굴 고분을 전시한다. 

하지만 다른 박물관의 고분은 모형이거나 이 전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원형 훼손이 이뤄졌다. 실제 무덤을 옮 겨 놓았다고 해도 그 수량은 한두 기에 지나지 않은 데다, 그것을 하 나하나 해체한‘조각’형태로 옮겨다가 다시 쌓아올린 형태라는 점에 서 발굴 당시 무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고 하기는 힘들고 다양 한 무덤 구조를 알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렇지만 판교박물관은 이들 과는 전연 다른 시도를 했다. 무덤을 통째로 떠서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이 일은 문화재 수리보존전문업체 서진문화유산연구원이 담 당했다.

이들은 바닥을 제외한 고분을 그대로 떠서 옮겼다고 한다. 이 를 위해 100톤짜리 크레인을 동원했다. 간단히 말해 온통 돌더미인 석실분 벽체는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땅에서 퍼내서 옮겨온 것이다. 
 

판교 신도시 출토 고려시대 불상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한 고분 이전 복원이다. 임시 개관 직전 이곳 진 영욱 학예연구사의 안내로 박물관을 둘러본 내가 놀란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몇 년 전 함박눈이 내리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본 그 무덤이 랑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이런 식의 이 전 복원을 했다고 한다. 

아! 유적은 발굴조사 그 자체가 곧 파괴다. 그렇기에 유적은 그 현장 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지금 이 순간에 수많은 유적이 여러 가지 이유로 조사도 없이 사라지는가 하 면, 조사 완료와 더불어 영원히 종적을 감추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 판교박물관은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최선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하 겠지만, 개발과 보존이 나름대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새로운 이정 표라 해도 그다지 손색은 없다고 본다. 

글·사진.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문화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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