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후지쓰카 치카시 藤塚隣, 과천의 추사 추사의 과천 그 위대한 출발

by taeshik.kim 2023. 7. 2.
반응형

2006.02.02 10:50:14
엠바고 1차 : 2006.02.02 10:50:14
추사 관련자료 2천700여점 한국에 기증
김정희 친필 20여 점 포함, 日 추사 연구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시서화에 두루 이름이 높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사거 150주년을 즈음해 그의 친필 20여 점을 포함한 추사 관련 자료 2천700여 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기증됐다.

이들 자료는 식민지시대에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평생 수집한 자료 중 그 집안에 소장돼 온 자료 일체로서, 그의 아들인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가 경기 과천시에 최근 기증한 것이다.

과천시는 2일 오전 시청 청사에서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기증품의 대략적인 내역과 그 가치 등을 설명했다.

정밀 분석이 진행 중인 이번 기증품 중에는 특히 추사 친필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는가 하면 추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간찰(편지)이나 서책류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시절 후지츠카 치카시와 그 아들



추사 친필 자료로는 제주도와 북청 유배 생활을 끝내고 만년에 과천에 정착한 추사가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낸 간찰 '우선에게寄藕船'를 비롯해, 40대 초반인 1827~1828년에 두 동생에게 보낸 간찰첩(13통)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제자 이상적에게 보낸 간찰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 실물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되며, 간찰첩은 40대 초반 추사의 가족사를 연구하는 데도 요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아가 이 간찰첩은 이른바 추사체가 확립되기 전 추사 글씨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예사적인 연구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과천시는 이들 자료 외의 다른 추사 친필 실물은 추후 상세한 고증과 조사를 거쳐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기증품에는 이 외에도 추사와 청대 학자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수행한 제자 이상적, 추사의 아우로서 청대 학계와 교류가 깊었던 동생 산천山泉 김명희金命喜, 그리고 추사가 스승으로 모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등이 청대 학자들에게서 받은 글과 그림 등 서화류가 60~70점이 확인됐다.

또 청대 학술, 특히 경학에 관한 주요 자료로 평가되는 '황청경해皇淸經解'(전 680책)를 필두로 하는 고서적 2천500여 책이 기증품에 포함됐다. 

 



이러한 자료들은 추사를 비롯한 조선후기 지식인 사회가 어떻게 청대 학술·문화계와 교류했는지를 밝히는데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기증품은 원래 수집가인 후지즈카 치카시가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고미술 거리)과 한국의 인사동 등지를 돌며 구입했던 것들로 그 중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는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 서예가이자 추사 연구가인 소전 손재형孫在馨이 후지즈카를 설득해 직접 찾아온 것이다.
taeshik@yna.co.kr 
(끝)

 
2006.02.02 16:09:46
<한국에 기증된 세계 유일본 옹방강의 책>
친필 필사본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본에서 최근 한국 과천시에 기증된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 2천700여 건 중에는 추사 친필 간찰 20건가량 외에도 매우 이채로운 가치를 지닌 자료가 포함돼 있다.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가 바로 그것이다. 

한권으로 된 이 '해동금석영기'는 우선 조선 혹은 한반도를 지칭하는 '해동海東'이라는 말이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선 금석문에 대해 빠진 기록을 정리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중국 베이징의 유명한 고서점 거리인 유리창, 혹은 한국에서 입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저자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이다.

 

옹방강翁方綱 친필 원고



옹방강은 자字를 정삼正三이라 하고, 충서忠敍라고도 했다. 호號는 담계覃溪라 하다가 만년에는 소재蘇齋라는 다른 호를 쓰기도 했다. 지금의 베이징인 순천順天 대흥大興 태생인 그는 건륭乾隆 17년(1752)에 과거에 합격해 진사進士가 된 이후 서적 편찬이라든가, 교육 전문관료로 활동했다.

옹방강은 그 당시까지 모든 문헌을 망라하다시피 한 지식 총서인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는 고증학考證學이 일세를 풍미하던 시대였다. 이런 추세에 그는 금석학金石學으로 부응했다.

옹방강의 이런 연구성과는 '양한금석기兩漢金石記'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전문 연구서적으로 빛을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청대淸代 제1의 금석학자로 꼽힌다.

한데 뜻밖에도 그의 친필로 된 '해동금석영기'가 이번 기증본 뭉치에서 발견된 것이다. 

옹방강이 직접 붓으로 쓴 원고 뭉치이기 때문에 자연 이 자료는 "세계 유일본일 수 밖에 없다"고 추사연구회 김영복 위원은 지적하고 있다.

이 자료는 중국에서도 끝내 활자화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문집 중 어디에도 이 자료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같은 추사연구회 김규선 위원은 덧붙였다.

따라서 이 '해동금석영기'는 옹방강 저술로 이번에 새롭게 존재가 드러난 자료가 되는 셈이다.

이 '해동금석영기'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조선 금석문에 대한 옹방강의 전문 연구 성과물이다. 

조선 사람도 아닌 청나라 사람이 왜 조선 금석문에 집착했느냐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청대 고증학 열풍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우문愚問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궁금함을 푼다는 자세로 돌진한 학문 풍조가 고증학이었으며, 그 대상 목록에서 조선 금석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청대 학자 유희해劉喜海가 편찬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전 4권4책)'은 지금도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제1의 참고문헌이 된다는 사실에서도 청대 고증학의 조선 금석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옹방강은 과연 어떤 통로를 통해 조선의 금석문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을까? 같은 관심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금석문 연구에서는 탁본 입수가 필수적이다. 옹방강이 직접 조선 금석문의 탁본을 제작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었으니, 이와 관련되는 정보를 옹방강은 대체로 조선의 지인들을 통해서 입수하고 연구했으며, 나아가 그런 연구성과를 조선 지식인들과 공유했던 것이다.

 

옹방강



다행히 이번 '해동금석영기'에는 옹방강이 조선 금석문을 접촉한 정보 통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친필 원고본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자세하지는 않으나, 전문가들이 대략 이를 검토한 결과 역시나 추사 김정희가 지대한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원고 한 대목에서 옹방강은 관련 자료를 추사를 통해 입수했으며, 더구나 그 자료에 대해 추사는 이러이러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기록하고 있다.

추사 외에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 또한 많은 조선 금석문 정보를 옹방강에게 제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옹방강과 추사가 활약한 18~19세기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 간 학술정보 교류는 어쩌면 지금의 한-중 학술계보다 더욱 활발했을 수 있다.

일본에서 기증된 이번 기증품 목록에서 추사 친필 뿐만 아니라 여타 자료 또한 왜 주목해야  하는지를 세계 유일본 '해동금석영기'가 웅변하고 있다.
taeshik@yna.co.kr 
(끝)



 
2006.07.08 10:47:18
추사 관련 고서 기증 日후지즈카씨 별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본학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가 평생 수집한 고서와 서화류 2천700여 건을 올초 과천시에 기증한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 씨가 지난 4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과천문화원(원장 최종수)이 8일 전했다. 향년 94세.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 다수를 포함한 후지즈카 소장품에 대한 한국 기증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12월과 2월, 두 차례 일본에서 후지즈카 씨를 만난 김규선 추사연구회 사무국장은 "선생이 '나는 이번 6월에 죽을 것이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결국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도쿄 네리마구에서 혼자 살던 후지즈카 씨는 자녀가 없어 조카딸이 5일 시신을 화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고야 출신인 그는 아버지를 따라 식민지 조선에 와서 서울중학교 전신인 경성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돌아가 고치高知고교를 거쳐 도쿄대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했으며 교직에 몸담았다.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오른쪽)



그는 올초에 도서 2천500여 책, 서화류 46점 등 총 2천700여 건에 이르는 소장품을 한국에 기증했다.

기증품들은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조선학 연구의 권위자인 그의 아버지가 베이징의 유리창(고미술거리)과 한국의 인사동 등을 돌며 구입한 방대한 컬렉션 중 2차대전의 참화를 견뎌낸 것들이다. 

김규선 사무국장은 "후지즈카 선생 소장품으로 (일본에) 남아있는 것은 서양책 수백 책이 있는데 이것도 한국에 기증하기로 생전에 선생이 약속했다"고 말했다. 

후지즈카 씨는 자료 기증 외에 추사 연구에 써 달라며 200만엔(약 2천만원 상당)을 과천문화원에 내놓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그의 기증 정신을 기려 지난 5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했다.
taeshik@yna.co.kr
(끝)

 
2006.08.18 11:01:37
추사연구 '후지쓰카' 잔여유품 과천 기증
김정희 친필 서간 6점·후지쓰카 육필 포함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연구를 개척한 일본인 연구자  후지쓰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와 지난달 4일 타계한 그의 아들 아키나오[明直] 부자 수집 도서를 비롯한 그들의 잔여 유품 100상자 분량이 최근 경기 과천시에 기증됐다고 과천문화원(원장 최종수)이 18일 밝혔다.

이로써 후지쓰카 부자가 수집한 고서와 서화류는 아들 아키나오 생전인 올초에 2천700여 건이 1차로 기증된 데 이어 그들의 관련 모든 유품이 과천시로 넘어왔다.

 

추사 친필서간 기양제첩



추사연구회 김규선 사무국장은 "이번 기증품에는 김정희의 친필 서간문임이 확실하거나 그렇게 추정되는 6점과 후지쓰카 치카시의 육필 원고, 충남 예산 추사 고택을 촬영한 1930년대 유리원판 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추사 친필로는 고모의 손자인 민태호에게 보낸 편지 5점이 있으며, 친구 권돈인에게 보내는 편지 1점은 확실치는 않으나 추사 친필로 추정된다. 

과천문화원에서는 9월29일-11월8일 과천시민회관 전시관에서 후지쓰카 기증품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taeshik@yna.co.kr
(끝)  
 

***
 
이들 기사에서 다룬 등총린 藤塚鄰ふじつか ちかし라 읽으니,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후지쓰카 치카시 라 해야 한다.

기사별로 표기가 왔다갔다 하는데, 저 기증품으로 토대로 건립한 과천 추사박물관에서는 후지츠카 치카시 라고 표기한다.

후자가 원어에 훨씬 가깝기는 하지만, 표기법상으로는 전자다. 둘을 혼용할 수밖에 없다. 

초창기라 이리저리 혼용하는 표기가 발견된다.

저 기증 건은 여러 모로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해외에 소재하는 한국학 자료의 몽땅 귀환이다. 둘째, 그 형식이 기증이다. 셋째, 이를 토대로 하는 전문 문화기관, 곧 박물관 출범의 토대가 됐다. 넷째, 그 추동을 민간이 시작하고 관이 협력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