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 망한 것이다.
첫번째는 서기 476년. 앞에서 설명한 한성 함락으로 개로왕은 참수당하고 사실상 당시 백제 지배층을 이루던 이들이 몽땅 사라져버리면서 나라가 공중분해되었다.
이후 백제가 부흥하는 과정은 실로 남송이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 비유할 만한데, 문주왕과 삼근왕을 끝으로 개로왕 직계가 소멸하자 왕위계승 서열상 가장 가까운 곤지 계열이 왕위에 차례로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라 하였다.
곤지는 알다시피 한성함락 이전 이미 왜로 가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당연히 이 계열은 왕위를 요구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한성함락으로 개로왕 직계가 사실상 소멸함으로써 이들에게 기회가 왔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곤지 계열은 남송의 황실, 동한의 광무제처럼 이전의 백제와는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데 비록 왕실과의 관계는 남송 황실이나 광무제보다 혈연적으로 훨씬 가까왔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이미 근거지를 왜로 옮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근거지를 왜로 옮긴 상태에 있던 왕족이 본국으로 귀환하여 왕위에 오르는 이러한 사건은 당시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생각지도 않던 여러가지 후과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던가. 동일한 광경을 이번에는 서기 660년 한번 더 목격하게 된다.
476년 한성백제 몰락 이후와 660년 사비 함락 이후 상황을 비교하면 거울처럼 두 사건 이후가 매우 비슷한 모양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당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됨으로써 476년의 기억과 동일하게 의자왕을 비롯하여 백제 지배층이 통채로 사라지는 경험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일본에 가 잇던 (부여)풍장이 귀국하여 왕위에 오른것은 동성왕의 귀국-즉위와 같은 이유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왕위에 오를 사람이 없어졌고, 가장 왕위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 일본에 있는- 동일한 상황이 한번 더 반복된 것이다.
이때 부여풍장은 귀국시키면서 잘 알려진대로 왜병과 함께 귀국하게 되는데 나중에 후술하겠지만 이는 동성왕의 귀국 때 정황과 매우 닮아 있다.
동성왕 즉위이후 왜의 동향은 부여풍장의 귀국-즉위 이후 그들의 움직임과 거의 판박이인것이다.
우리는 흔히 서기 660년 사비성 멸망 이후 왜의 동향만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데 동성왕 즉위 이후 왜의 움직임이 사실 서기 660년 이후의 모습을 거의 방불하였다는 점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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