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붕괴 사태에 즈음해 저를 부른 화재 같은 사건사고야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런 까닭에 그 대비가 어느 정도 철저한가에 따라 그 대응과 복구가 갈라지는 법이라, 나야 저쪽에 문외한이지만, 내 식으로 이해를 치환한다면 결국 백업 문제로 귀결하지 아니하는가 한다.
나는 그 예화로 사진 문제를 들고자 한다. 보다시피 나는 사진에 미친 놈이라, 그냥 좋아 찍는 것도 있지만, 기록용도 적지 아니해서 기록 역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편의상 갈라본다면, 둘 다가 자료 보관의 안전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그걸 피하고자 쓰는 고전적 수법이 실록 사고 수법이라, 조선시대 관찬 공식 역사편찬물인 그 방대한 실록이 언제건 인멸될 우려를 알았기에 조선왕조는 복제와 분산배치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고리로 삼은 보관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때야 기록이라 해봤자 문자로 남기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니, 원본이 따로 있고 그 원본을 고대로(실상 고대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암튼 그 원전을 충실히) 모사한 복제물을 여러 부 만들어 전국 각지에 분산하는 수법을 썼으니, 이는 무엇보다 화재 우려 때문이었다.
설혹 화재나 전쟁 같은 참화를 만난다 해도 저 중에서도 적어도 한 곳만 살아남아도 그것을 기화로, 다시 그것을 모본母本으로 삼아 다시 복제해서 분산배치하면 되었으니
실제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 적어도 임란 이전 기록은 기적처럼 살아남았으니, 전국 분산배치한 데이터베이스 창고 중에서도 이순신이 버틴 전라도 땅 전주사고인가가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혹자는, 그리고 이 분야 전업적 학문종사자들도 이런 개사기를 가끔 치는 모습을 보는데, 이것이 조선왕조 혹은 한민족이 발명한 전매특허인양 하지만, 실록을 이리 분산 배치하는 수법은 실은 동아시아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실로 광범위한 수법이었으니, 당장 위진남북조시대에 저와 같은 수법을 썼으며, 그 이전을 봐도 그에 관련한 기록이 상대로 풍부한 한대漢代를 봐도 이 수법을 써서 기록물을 영구히 전하고자 했다.
나는 무수히 찍어댄 그 사진을 물론 외장하드에 주로 보관하지만, 문제는 이것도 망실 우려가 커서, 또 무엇보다 외장하드라는 그 기기가 탑재한 원천 결함도 있어, 복본을 분산 배치하는데, 예컨대 남영동 사저에서도 처음에는 서재 1층과 3층에 각각 갖다 놓은 외장하드로 분산 저장하는가 하면, 수송동 공장에도 그런 외장하드가 있어 거기에 같은 자료를 배치하곤 한다.
물론 이것도 일시에 날아간다면야 하늘의 뜻이니 어쩔 도리가 없으나, 이렇지 아니하면 안 될 듯한 조바심 때문이라고 해 두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냥 유별난 집착증이라 해 두자.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같은 자료를 다운로드해 그것을 소재별로 주제별로 다시 분류하고, 그와 같은 짓을 두 번 세 번 심지어 네 번 한다는 게 성가시기 짝이 없어 언젠가부터는 그것도 귀찮아서 한 곳에만 몰아두고 마는 일이 빈발해 이러다가 진짜로 어느 하나 외장하드 날아가면 내 인생 절반이 날아갈 듯한 절박성이 언제나 엄존한다.
이건 사진 얘기고 텍스트로 넘어가면 또 달라서 이짝도 골치 아프기 짝이 없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만 해도 지금은 티스토리에 마련한 이곳이지만, 2000년대 초반 운영한 블로그 글들은 그 수량이 하도 엄청나서 그것이 폐쇄한다 했을 적에 그것을 다운로드 하느라 몇날 며칠을 샜다.
한데 이것도 문제가 적지 아니해서 무엇보다 그에 첨부한 사진들은 전부 망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그 꼬라지는 현재 남은 선화봉경고려도경과 꼭 진배없이 흔히 고려도경이라 약칭하는 이 문헌은 圖經, 곧 그림과 글이라고 하지만, 그림은 몽땅 다 사라져 버리고 텍스트만 남은 꼴과 똑같다.
이곳저곳 내가 싸지른 글 중에서 내가 주구장창 써먹는 것도 적지 아니해서 이런 것들은 언제나 갈무리 해두어야 하고, 그런 필요성에 따라 블로그를 운영 중이지만, 티스토리만 해도 이번 참사 직접 피해 당사자라, 이런 일이 아니라 해도 이 블로그가 영속하리라고는 나는 보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것도 없어질 것이며,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또 저번과 같은 고된 일을 반복해야 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에 즈음한 카카오 풍덩 사태에 카카오에서는 백업이 잘 되어 있는양 자신하는 모양이지만, 어째 흘러나오는 말들을 종합하니 허술하기 짝이 없는 듯하다.
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틈바구니를 바로 정부권력이 헤집고 들어가려는 모양인데, 민간영역에 이런 권력이 개입하는 일이 맞느냐 하는 논란은 필연적이다.
그 같은 카카오가 접때 사생활 자료를 몽땅 유출했다던가 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거니와, 국가 권력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정보의 악용을 부르고야 만다.
결국 나 자신이 백업백업백업을 외치는 수밖에 없는데, 이 백업이 또한 그것을 구축한 사람을 거꾸로 옥죄는 일을 너무 많이 보아서인가? 그렇다면 팔자에 맡길 수밖에 없을까?
이래저래 카카오 퐁탕퐁당 사건이 조금은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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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영역에 이런 권력이 개입하는 일이 맞느냐 하는 논란은 필연적이다." - 국가가 개입하면 중국이 되는 것이고. 민간기업이 고객 신뢰도를 중시해서 백업을 목숨 걸고 하면 구글이 되는 거고, 돈 아끼고 있으면 개구리가 되는 거죠.
저에 대한 畏友 이정우 선생 평이 천하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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