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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기념물로서의 진흥왕 ‘순수비’

by 한량 taeshik.kim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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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대전(封禪大典), 그 기념물로서의 진흥왕 ‘순수비’ 
김태식(Kim, Tae-Shik)
《백산학보》 68 (2004): 57-94

 

*** 

 

봉선封禪이란 무엇인가? 하늘에서 지상의 독점적인 지배권을 부여받았다고 간주되는 지상의 절대군주가 그에 보답하고자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산상에 올라 지내는 제사다. 따라서 봉선이 감사하는 대상은 천신지기天神神祗다. 

 

봉선이란 이처럼 간단하다. 진흥왕이 왜 산상에 올랐는가? 이 또한 실로 자명하다. 봉선이다. 봉선을 거행하고자 하고 많은 곳 집어치고 산상에 오른 것이다. 

 

이 간단한 것을 모르는 자가 천지빼까리다. 헛소리가 난무한다.

 

예컨대 주로 불교사상사를 공부한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최병헌은 이들 순수비를 염두에 두고서는

 

"또한 순수비의 수립 장소로서 북한산 비봉·황초령·마운령 등 높은 산 위를 택했던 것은 산천이나 하늘에 대한 제사 의례나 하늘에 대한 誓約 관념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최병헌, 신라 진흥왕대의 국가발전과 정치사상 - 진흥왕순수비 · 황룡사장육존상 조성의 역사적 의의 - 신라문화新羅文化 第54輯,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9. 08)

 

고 말했거니와, 이것이 바로 봉선이다.

 

봉선을 눈앞에 두고도, 봉선인 줄 모르니 이것이 눈뜬 당달봉사 아니고 무엇이랴? 

 

***

 

 

북한산 비봉

 

 

Ⅳ. 결 론
소위 진흥왕 4대 순수비 중 창녕비를 제외한 나머지 세 순수비는 봉선의 기념비였다. 이러한 봉선제는 비록 그 표면에 유교적 왕도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듯하나 그것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유가적 전통과 연결시켜서는 실로 곤란하다. 봉선제는 그 유래가 산악신앙과 결합한 신선사상에 있었던 것이며, 진흥왕 순수비 또한 그 위치가 하나같이 산정이며 더구나 제신으로 神祗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구나 중국사에서 봉선대전 뒤에는 으레 따르기 마련인 그 기념비로서의 각석(刻石)의 전통이 진흥왕 순수비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순수비가 봉선의 기념물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순수비는 이제 봉선비라는 좀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나아가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순수비문 그 자체에서는 널리 지적되고 있듯이 소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표방하고자 하는 흔적이 농후함은 부인할 수 없는 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유가적 전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왕도정치가 유가적 특성이 되기 위에서는 그것이 오직 유가만의 전유물이 되어야 이런 주장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노장 철학도 성인(聖人)에 의한 이상적 왕도정치를 내세우고 있고, 법가사상도 법률만을 강요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엄연히 왕도정치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 사상이 추구되었던 것이다. 불교 또한 그것이 주창하는 정치철학은 왕도정치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역설적으로 말하건대 왕도정치를 펴지 말라고 주장한 부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왕도정치를 유가적 특성이라고 단정함으로써 그것의 유가의 전유물로 삼고자 하는 주장은 성립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봉선을 통해 진흥왕은 그 자신이 일군 신라왕국에 대한 독점적 배타적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한편 不老長生하는 신선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북한산 비봉 진흥왕 순수비 

 

 


King Jinheung's ‘travelling monuments’ and the Fengshan sacrifice

 

Kim, Tae-Shik


There has not been any doubt that the four ‘travelling monuments’(巡狩碑) of King Jinheung(眞興王) of the Silla kingdom were to erected to confirm his sovereignty over the newly conquered people and territory and to gather the wholehearted support of the people by praising and rewarding persons who has done distinguished service to the kingdom. But such a opinion are completely denied by the locations of the monuments. Three of the four monuments are located in each high and dangerous mountaintop. That means the monuments have no readers! It has no doubt that any king cannot gather the support of the people or praise and reward a medal for merit on such a mountaintop.


However, the monuments definitely have each reader. Who are their readers? They are Heaven(天神) and Earth(地祇). Mt. Bukhansanbi(北漢山碑), one of the three monuments have records that the kingdom and its king are well reigned by the thanks of Heaven and Earth. The king who helped by Heaven and Earth should reward them in turn. Therefore, the monuments that contain such records were erected to praise Heaven and Earth. And we can see they
are the monuments for the celebration of the Fengshan(封禪) sacrifice, which was begun by the First Emperor(Qin Shihuangdi. 秦始皇帝) of the Qin dynasty right after his unification of China.

댓글28

  • 四叶草 2020.07.26 07:12

    당달봉사 ㅋㅋㅋ. 제가 낄 자린 아니지만, 두 분 말씀이 다 옳은 거겠죠. 하늘과 땅 이야기는 봉선이라는 글자가, "登封报天,降禅除地" 《史记·封禅书》에서 온 것이니까 그렇게 소개할 수 있고요. 그런 제사행위를 하는 이유는 말씀하신대로 지상의 절대군주가 하늘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두 견해가 상충하지 않겠죠.

    답글

    • 표절이죠 인용을 안했으니깐

    • 四叶草 2020.07.26 07:17

      제가 궁굼한 것은, 교수님의 封禪는 중국인의 정의이고, 진흥왕이 그대로 했느냐인데, 封禪을 하려면 산정상에서 封하고 내려와서 禪을 해야하는 데, 진흥왕이 封은 했지만, 禪까지 했는 지는 모르겠죠. 즉 한국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 종묘제례가 중국에서 유래한다 해서 그대로 따라하지 않습니다
    답글

  • variation
    답글

    • 四叶草 2020.07.26 07:26

      variation이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하겠죠. 중국자료만 보고 자신이 추정한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는.

    • 문화권별로, 또 시대를 달리해서 무수한 베리에이션이 존재하죠.
      같은 사찰이라 해도 인도 동남아 중국 일본 한국이 시공간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분모를 기초로 우리는 그것을 寺라 하죠. 이른바 그랜드디자인. 이 그랜드디자인을 잡아낸 것이며 그 세부를 따지기엔 한쪽의 증언이 소략하죠

  • 연건거사 2020.07.26 09:46

    사실 순수와 봉선은 같은 개념은 전혀 아닙니다. 순수는 천자가 제후의 땅을 순력하는것으로 제후가 천자를 찾아뵙는것의 반대 개념이라 산꼭대기로 올라갈 이유가 별로 없어요.. 저것이 사실 순수비를 설명하면서 숫가락 얹듯이 하늘에 대한 제사를 슬쩍 끼워 넣어서 될일이 아닙니다.. 봉선은 봉선, 순수는 순수, 그렇지요. 왜 순수비를 하필 산꼭대기로 올라가 세우느냐 그것이 요점이 될텐데 그 점에 착안해서 이것은 봉선의 흔적이다고 이야기 한것은 탁견이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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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09:47

    저 비에 순수라는 개념이 나온것도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천자가 자기 땅을 돌아볼때는 순수라는 말 안씁니다.. 제후의 땅, 간접지배하는 땅을 돌아볼때 순수라는 말을 쓰는것인데.. 저 순수비가 세워질 당시 순수비가 세워진 지역에 대한 신라의 지배방식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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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09:51

    일반적으로 순수비라는 것을 왕이 자기 땅 돌아보고 척경비처럼 세웠다고 본다면 저 비가 가진 함의성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김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저 순수비는 비전형적인 부분이 많지요.. 위에 썼듯이 순수비인데 왜 산꼭대기로 올라가느냐 하는 부분도 그렇고, 자기땅 돌아보고 세운거라면 이름이 왜 순수비냐 하는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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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09:53

    순수라는 말이 저 비문에 나오는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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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09:59

    봉선이라는 것이 원래 진시황이 천하 통일 후 순력하면서 올린것이 역사상 확인되는 시초 아닌가요? 진흥왕 순수비는 경전적 의미에서 볼때 순수보다는 봉선과 더 비슷한것은 사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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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10:02

    天子適諸侯曰巡狩, 巡狩者巡所守也; 諸侯朝於天子曰述職, 述職者述所職也. 無非事者. 春省耕而補不足, 秋省斂而助不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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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10:04

    순수라는 행위의 경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산으로 올라갈 이유가 없어요... 사실 마운령, 황초령비도 이것이 당시 신라가 이 땅을 새로 편입하고 세운 척경비라는것인데 이 땅이 신라 판도에 들어온것이 정말 진흥왕때가 처음이라 이때 척경비의 의미로 세운것인지 뭔지 의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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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건거사 2020.07.26 10:20

    삼국사기에 온조왕 일행이 올라갔다는곳도 비봉 아닌가 싶어요. 인수봉이라는 주장은 택도 없는 소리고, .. 비봉 올라가는 길은 북한산 일대에서 그래도 정상까지 접근하는 길이 일찍부터 나 있었던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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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四叶草 2020.07.26 11:06

    순수와 봉선이 개념은 다르지만 되도록이면 병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진시황이나 한무제는 순수를 하면서 봉선할까 말까 의논해보니 의견이 분분한데, 하자해서 했고, 한문제의 경우 순수는 하는데 봉선은 재정사정이 어려워서 의논 끝에 취소했더는 말이 있으니. 그런 점에서 모든 봉선은 순수이나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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