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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말했듯이 이런 ㅁ자형 건물 배치는 조선시대 내내 보편적이다.
사대문 안 주거지는 이미 15세기에 이 모양이라 마당엔 바람 한 점 안들어온다.
왜 이랬을까?
택지 이용율 때문이다.
택지는 좁지 인구는 많지 좁은 땅덩이 농가묵다 보니 저리 지을 수밖에 없다.
이를 단숨에 해결한 괴물이 아파트다.
층수를 무한정에 가까이 높이면서 택지 이용율은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아파트는 생각처럼 저주는 아니다.
그것은 돌파였고 혁명이었다.
(2015. 8. 2)
***
아파트 찬가가 아니다.
삐딱하게 보기 일환이다.
상식은 의심해야 한다.
아파트를 괴물로 보는 시각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략 70년을 호령한 아파트를 밀어내는 새로운 밀물은 또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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