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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부여 고구려 문명의 기초로서의 잡곡 농경

by 초야잠필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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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사에서 도작 이전의 잡곡농경을 매우 저평가하면서도

부여와 고구려 문명이 한반도 남부보다 빨리 일어났다는 점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것 모순이 아닌가? 

부여 고구려 문명은 고구려의 남천 이전에는 

도작에 기반한 적이 없으며

남천 이후에도 한강유역을 획득하기 전에는

도작이라는 것의 맛을 제대로 보았을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결국 부여 고구려 문명은 남만주-한반도 북부 일대의 잡곡농경에 기반한 문명일진대, 

이는 사실 쌀만 제대로 된 곡식으로 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생산성에 의문을 가질지 모르나, 

사실 찬란한 황하문명도 바로 조, 수수, 기장에 기반한 잡곡문명이었다는 점을 하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여기 여러 번 쓴 것 같지만, 

도작문명과는 별개의 잡곡문명권을 

도작문명사 만큼이나 파고 들어야

한국인의 형성과 만주일대의 한국사의 모습이 제대로 보일 것이라 본다. 

한반도 남부의 도작 문명 이전에 초보적 농경이 아니라

성숙한 형태로서의 잡곡 문명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을까? 

최근에 발표되는 일련의 논문들은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웅변한다 하겠다. 

 

잡곡농경에 기운 불어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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