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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서 강남으로 이주가 본격 시작된 것은 동진 때부터로 안다.
그리고 강남의 경제력이 화북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남송 때부터로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화북지역 사람이 남쪽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화북은 잡곡농경,
화남은 도작농경 지역이며 그 사이인 회하 유역이
혼합농경지대에 해당한다.
동진과 남송이 강남으로 옮겨 간 후
다시는 화북과 통합되지 않고 동진과 남송이 계속 유지되고,
그 후 동진과 남송이 북벌과 고토회복을 계속 꿈꾸며 살았다고 치자.
그게 한국사다.
무슨 말인고 하니,
원래 한국사는 잡곡농경지역과 혼합농경지역이 병존하고 있었는데
삼국통일 과정에서 잡곡농경지역이 이민족에게 함몰되어 버린 상태가 되었다 이거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는 두 지역은 합쳐지지 않고
남쪽 혼합농경지역이 북진을 꿈꾼 역사. 그것이 한국사 아니겠나?
중국에서 한국사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않은것은 강남과 화북과 분리되었다가도
다시 합쳐지는 역사가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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