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반도 도작 환경의 변화

by 초야잠필 2022. 8. 17.
반응형

자세한 것을 밝히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한반도는 도작 도입 당시가 벼농사 재배에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가 시대가 뒤로 갈수록 그 조건이 점점 악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 전체의 입지로 보면 훨씬 북방까지 도작에 양호한 자연환경 조건이었다가 시대가 뒤로 갈수록 조건이 악화하여 도작 가능한 영역이 축소되어 보다 남쪽으로 도작이 후퇴하는 양상이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사건을 제외하고 보면 한국사에서 만주의 상실은 이러한 도작환경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훨씬 북쪽까지 도작이 가능하다가 조건이 악화하면서 남쪽으로 도작문화가 후퇴하는 상황이 바로 "만주의 상실"로 역사상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렇게 본다면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살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장기적으로 남쪽으로 이주해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의 연속상에 있는 것이 일본열도로 한반도인이 건너가 도작문화의 막을 연 것도 포함될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도작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고려-조선시대로 갈수록 도작의 조건은 날로 악화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결과의 최종결과가 임란 이후 주변국과 비교하여 조선 왕조 경제 낙후의 가장 근본적 이유였다고 본다.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경제가 갑자기 환골탈태한 이유?

바로 도작에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이런 파라다임을 깨고 먹고 사는 새로운 방식을 창출해 낸 데 있다.

더 이상 도작에 신경쓰지 않게 되면서 한국인은 비로소 "벼농사의 질곡"에서 해방된 것이다.

토지박물관의 초기 수도작 풍경 (디오라마)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