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혹은 이 보도를 나는 희미하게 기억하는데, 그때야 그 실현까지 따질 계제가 아니었으니, 아무튼 저렇게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무렵 추진한 홍범도 유해 봉환은 흐지부지하고 말다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그 실현을 본다. 저를 봉환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펼친 화려한 정치 쇼야 불과 2년 전이니, 더욱 뚜렷한 기억으로 각인할 것이다.
시신도 아니요,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도 없는 뼈, 혹은 뼈가 남았을지도 모르나, 흙 몇 더미 파온다고 전투기를 몇 대나 동원했으며, 그들이 하늘에서까지 그 흙더미를 마중하는 쇼를 펼쳤으니, 이런 장면을 목도하면서 참말로 많은 상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나는 해 둔다. 그 속내야 알았지만, 속아줄 수밖에 없었다.
혹자야, 혹은 내가 발 담근 정치지향에 따라 그 시신 혹은 신주 대용으로 제작한 동상 혹은 흉상 처리 문제를 두고, 어쩌니저쩌니 하며 그 정치 지향이 겨냥하는 반대편을 공격해 대느라 여념이 없더라만, 그 봉환이 대단한 정치공작이었듯이, 그에다가 어떠한 타격 혹은 변화를 주려는 책동 또한 대단한 정치공작이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저때 저런 보도가 동아일보 한 군데만 보이며, 또한, 저 사안이 과연 1면 톱을 장식할 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부호가 붙으니, 볼짝없다, 저런 사안은 보통 이건 우리 특종이라 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특종이란 무엇인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남들은 안 썼는데 나만 쓴 기사다. 저 유해 봉환은 동아일보가 자신있게 우리 특종이라 해서 고른 사안이다.
저 사안은 저 보도를 둘러싸고 이렇다 할 후속 기사가 없고, 무엇보다 다른 언론들이 잠잠했던 것을 보면 오보 혹은 그에 가깝게 적어도 당시에는 취급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
그렇다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야 나겠는가? 놀랍게도 한국 정부가 저리 밀어부친 것은 사실이었다.
저 보도가 나간 시점에서 대략 다섯달이 흐른 1995년 8월 24일, 북한이 이 사태로 공식으로 개입한다. 남한에서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유해를 남한으로 가져가려 한다면서, 이 책동을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아래는 그 북한 움직임을 전하는 8월 25일자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보도다.
북한, 洪範圖 유해 서울 이장에 반대 표명
(서울=聯合) 북한은 24일 평양방송을 통해 한국정부가 카자흐스탄에 묻혀있는 항일의병장 洪範圖장군의 유해를 서울로 옮기려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25일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에 있는 반일 의병장 홍범도 열사의 유해를 서울의 국립묘지에 옮겨가려고 사기협작극을 함부로 벌이고 있다"고 맹비난하면서 "민족성은 독립운동자들의 유해나 몇구 옮겨 놓는다고 해서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洪範圖장군의 고향은 평양이며 그의 선친들의 무덤과 후손들도 평양에 있음을 지적, 따라서 "홍범도 열사의 유해는 서울로가 아니라 평양으로 옮겨져야 한다"며 연고권을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최근 우리정부가 카자흐스탄 정부측과 洪장군 유해 서울 이장 문제를 긴밀히 협의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당초 우리측의 洪장군 서울 이장 요청에 대해 북한의 강경한 반발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최근에는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취재본부>(끝)
이 일은 카자흐 정부를 멈칫하게 한다. 양쪽 눈치를 봐야 하고, 자칫하면 그 어떤 결정은 어느 한쪽을 적으로 돌려버린다.
하지만 국제관계가 그런가? 이런 첨예한 사안을 두고 서로 잘 보이겠다고 달려오기 마련이라, 그 결정권을 쥔 국가는 이 놀음을 끝까지 즐겨야 한다. 왜? 그래야 내가 얻는 게 많으니깐.
이걸 조선 초기의 군주 세종은 너무 잘 알았다. 고려 말 이래 일본에서는 줄곧, 그리고 끈질기게 해인사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판을 우리한테 달라고 사신을 보내오고, 각종 선물공세를 펴며 하루가 멀다하고 와서는 애걸복걸했다.
어느 시점에는 결단이 필요했다. 우호의 표시로서 증정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명분을 찾아 거절할 것인가?
세종이 말한다.
"우리가 그것을 주고 나면, 일본 애들이 더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고로 우리가 계속 갖고 있는다."
안 믿겨? 실록에 저리 남아있다. 국제관계란 그런 것이다. 홍범도 유해를 두고, 그 연고권을 두고 북한이 남한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 주장하는 마당에, 카자흐 정부는 덜커덩 남한 정부 손을 들어버리겠는가? 그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결국 이 일은 무산됐다. 그 결정권을 쥔 카자흐 정부는 예상대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아니 대강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북한 눈치도 안 볼 수 없으니, 당분간은 봉환이 어렵겠다. 추후 기회를 좀 더 보자. 대신 이렇게 된 마당에, 남한 정부도 우리한테 뭘 좀 줄 수 없겠는가? 우리가 이 문제는 계속 물밑에서 지원할 테니 말이다."
등신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꼭 이 사안이 아니라 해도, 카자흐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CSI 국가 중에서도 리더격이라 해서, 또 심지어 남방정책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에서 중앙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라는 이유로 역대 한국정부는 적지 않게 공을 들인 지역이다.
그 구체적인 양상 정리야 내 몫이 아닌 듯해서 생략하거니와, 다시 저 홍범도 시신 문제로 돌아가면 무산한 시신 봉환 허탈함은 결국 묘지 정비로 대체하게 된다. 관련 소식은 아래에서 발견된다.
1996. 05. 20 14:22:00
洪範圖장군 묘역성역화 준공식 거행
(서울=聯合) 국가보훈처는 20일 오후 1시(한국시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市 소재 洪範圖장군묘역을 새로 단장한 묘역성역화 준공식이 金昌根 駐카자흐스탄 한국대사, 李善雨 보훈처 자료관리과장, 파파르바에프 크즐오르다 주지사 및 시장과 현지교민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군묘역에서 엄숙히 거행됐다고 밝혔다.
洪장군(1869∼1943)의 묘역은 당초 5평규모였으나 보훈처와 카자흐스탄 현지 교민 등의 성금으로 모은 美貨 1만7천5백달러를 투입해 지난해 12월부터 성역화작업에 착수, 묘역을 110평으로 확대하고 진입로를 새로 개설했으며 洪장군 동상 座臺를 개량하고 돌계단, 안내판을 새로 설치해 이번에 준공식을 가진 것이다.
이날 준공식에서 金泳三대통령은 金대사를 통해 헌화했으며 黃昌平보훈처장은 李과장이 대신 읽은 축사에서 "평생을 조국을 위해 몸바치신 장군의 뜻을 기리고 늦게나마 묘역을 성역화하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洪장군의 유해를 국내에 봉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왔으나 북한도 장군 유해를 송환하기를 희망하고 있어 한국에 봉환할 경우 남북관계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洪장군이 카자흐스탄 거주 10만여 교민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을 감안,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성역화한 것이라고 보훈처는 덧붙였다.
洪장군은 일제치하인 1920년 두만강 부근 鳳梧洞에서 일본군부대를 크게 무찌르는 한편 金佐鎭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에 참가, 일본군을 격파한 무장독립투쟁의 영웅으로 정부는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훈장은 駐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에 전시되고 있다. (끝)
이렇게 핑퐁 게임을 오간 홍범도 시신 놀이는 마침내 문재인 정부 들어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이를 기화로 동상 흉상도 제작해 육사에다가도, 국방부에다가도 세우고 하는 블라블라 쇼로 한참 재미보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유효기간이 있었다는 데 있다.
유효기간은 딱 2년이었다.
유제품보다는 좀 길었지만, 금방 만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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