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사문화는 굉장히 오래된 것 같지만,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관혼상제의 상당부분을 불교 사찰들이 떠 안고 있었다.
지금 일본을 가보면 일본인들의 관혼상당 상당부분이
불교사찰이나 신사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이걸 집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굳이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모두 마찬가지다.
추모의례가 됐건 매장이건 간에 교회로 가던 아니면 다른 공적 시설을 찾게 되어 있지
이걸 굳이 집안에서 끼고 있는 나라는 적어도 선진국 중에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한국역시 조선건국 이전까지 관혼상제가 불교사찰들의 밥줄이었는데,
이것이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사대부들의 공격 타겟이 불교의례가 되면서
사찰에서 행해지던 많은 관혼상제 예식들을 사대부 반가에서 스스로 전부 다 떠 안게 되었다.
16세기 이후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사대부 반가의 의례를 정비하려다 보니 뭐 하나 되어 있는 게 없어서
주자가례를 반 강제적으로 준수하도록 하고
장례에 제례까지 예서로 통제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뒤집어서 이야기 하면 그 시절 이전에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상례 제례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당부분이 사대부들이 신경 쓸 필요 없이
불교 사찰들이 안고 있었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례와 제례를 반가에서 껴안고 가는 이런 패턴이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 불교사찰이나 교회는
관혼상제로 유지되는 종교조직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도 이 문제에 대해 별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예식장"이라는 파워풀한 대안이 나온 혼례,
원래 민중 사이에선 유명무실했던 관례를 제외하면
상례와 제례는 온전히 개개인의 가정의 몫으로 그대로 남게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상례와 제례를 주자가례에 기반한 제사로 꾸려나가는 건
한국의 전통의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이걸 "효"라는 윤리와 "한국의 전통", "한국의 역사"와 범벅을 만들어
앞으로도 계속 끌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기 바란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액자로 명예롭게 들어갈 타이밍을 놓치면
그다음은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우리나라 제사와 선산은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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