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詩 & 漢文&漢文法

비수가悲愁歌-국제관계가 빚은 여인의 한恨

by taeshik.kim 2019. 9. 14.
반응형


한漢 왕조는 유방에 의한 왕조 개창과 더불어 항우와의 쟁투를 통해 천하를 제패했다 했지만, 실은 빈쭉정이에 지나지 아니해, 다름 아닌 북방의 강가 흉노에 시종해서 시달렸으니, 유방에 의한 이른바 통일전쟁 과정에서 지금의 산서성 대동에서 겪은 이른바 백등산 참패는 두고두고 수모를 안겼다. 

막대한 뇌물을 써서 겨우 목숨을 건진 유방은 굴욕적인 외교관계에 서명하니, 이후 내내 한 왕조는 흉노에 시종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다름 아닌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漢은 마침내 무제武帝시대가 개막하면서 대 흉노 정책 공세로 전환하게 되거니와, 내실을 다진 결과이기도 하고, 마침 당시가 군수업자 전성시대라 무기상들이 권력을 쥐락펴락하던 시기라, 이들에게 전쟁은 부의 더 많은 축적과 권력 유지를 위해 전쟁이 필요했다. 

거상巨商들이 활개를 쳤고, 구리광산을 장악한 이들은 권부 요소요소를 장악했다. 
한 왕조 초창기를 장악한 사상사 대세인 황로학黃老學은 기실 도가와 법가의 결합이었지만, 무제 시대가 개막하면서 그런 황로학도 일대 변모를 꾀해, 전쟁 기운이 싹트면서 그 반쪽짜리 도가를 밀어내고 법가法家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유가 역시 세력 확대를 꾀하기 시작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흉노 정복을 위한 꿈! 
그 꿈을 위해 무제는 어떤 방식을 채택했던가?

흉노를 바로 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팔다리를 먼저 짤라버릴 것인가? 이것이 문제였으니, 곧장 치고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위험부담이 많았다. 

흉노 하나를 치는 것으로 좋겠지만, 국제관계란 그때나 지금의 무척이나 복합적이고 누층적이라, 흉노를 치면 그 동맹국들이 한나라 주변을 치게 되는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 뻔했다. 

이걸 모를 리 없는 한 조정에서는 그 막강한 흉노를 제압하고자 먼저 주변부 정리에 들어간다. 

좌익左翼과 우익右翼...북방의 횽노는 지금의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강고한 제국을 형성 중이었으니, 남쪽으로는 끊임없이 한 왕조를 겁박하는 한편, 한 왕조를 포위하는 형국을 만들었으니, 그 좌익과 우익을 모조리 그네들 동맹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따라서 흉노를 치기 전에 먼저 흉노의 이 좌익과 우익을 쳐야했던 것이다. 좌익에는 조선이 포진했으니, 우거왕이 든든한 흉노의 동맹 배후국이었다. 그 반대편 서쪽 우익에서는 오손烏孫이 대표하는 이른바 서역 제국諸國이 포진했다. 월지니 하는 왕조들도 그 일원이었다. 

이 서역을 손아귀에 넣고자 마침내 한 왕조는 장건을 사절로 파견하고, 나아가 군사행동 개시에 들어가 야금야금 서역 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흉노 역시 가만있을 리 만무한 법. 서역 제국들에 대해 강온 양면책을 강구한다. 

서역 쟁패를 둘러싼 이 양대 거두가 동시에 채택한 외교방식이 이른바 화친공주였다. 공주를 서역 제국에 시집 보내 그들과 결혼동맹을 형성하고, 이를 고리로 서로에 대한 압박에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래 시 작자인 오손공주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우리 조정 나 시집보내니 하늘끝이라
머나먼 나라로 의탁하니 오손왕이네
게르로 집을 삼고 양탄자로 벽 만들며
고기로 밥을 먹고 타락죽이 국물이네
언제나 고국 생각에 마음만 아파오니
부디 고니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吾家嫁我兮天一方
遠託異國兮烏孫王
穹廬為室兮旃為牆
以肉為食兮酪為漿
居常土思兮心內傷
願為黃鵠兮歸故鄉


이 시를 비수가悲愁歌라 하는데, 그 작자 이름을 따서 오손공주가烏孫公主歌라 하는가 하면, 혹은 그 소재를 착목해 황곡가黃鵠歌라고도 한다. 

가장 이른 시기 현존 문헌으로는 《한어漢書·서역전하西域傳下》에 집록되었으니, 이후 《옥대신영玉臺新咏》 권 제9에 저록되었다. 《악부시집樂府詩集》에서는 이 시를 권 제84에 저록하면서 유세군劉細君 작作이라 밝히면서 “잡가요사雜歌遙辭”로 분류했다. 

유세군劉細君은 서한시대 여인으로, 강도왕江都王에 책봉된 유건(劉建)이라는 사람의 딸이다. (세군은 증조부가 한 경제景帝 유계劉啟이며, 조부는 강도江都 역왕易王 유비劉非다.) 

강도공주江都公主에 책봉되어 한 무제 원봉元封 6년(기원전 105)에 오손국왕烏孫國王 곤막엽교미昆莫獵驕靡한테 시집간다. (안사고顏師古가 이르기를 “昆莫은 본디 왕호王號이며, 그 이름이 獵驕靡라, 그리하여 사서에서는 그를 곤미昆彌라 한다”고 했다.) 劉細君은 증조부祖父가 漢 景帝 劉啟이며, 祖父는 강도江都 역왕易王 유비劉非다.  

당시 한나라 조정은 북방의 강자 흉노匈奴를 견제하고자, 그 오른편에 위치하는 오손烏孫 왕국과의 형제의 나라라는 화친 정책을 추구하거니와, 이를 위해 유세곤이 일종의 볼모로 간택되어 간다. 이후 유세곤을 오손공주烏孫公主라 부르게 된다. 

원수元狩 2년(기원전 121), 그의 부친 유건劉建이 모반을 기도했다가 발각되어 자살하고, 모친 역시 같은 혐의로 참수된다. 다만 유세곤은 어리다 해서 환난을 피한다. 이 무렵 匈奴汗國 혼야왕渾邪王이 투항하자 하서주랑河西走廊이 한나라 영역이 된다. 이를 통해 한나라는 서역 제국과 마침내 직접 통교하게 된다. 

원정元鼎 원년(기원전 116), 장건張騫이 이끄는 제2차 서역 사절단이 출발해 오손국왕烏孫王國을 면담한다. 이후 한나라는 서역西域 제국諸國과 왕래가 나날이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烏孫王國은 중국의 풍부한 물산에 놀라 중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원봉 3년(기원전 108), 한나라는 서역 정벌군을 일으켜 누란왕樓蘭王을 포로로 잡고 거사車師를 파괴한다. 이에 놀란 오손왕烏孫王 곤막昆莫은 한나라에 신복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흉노는 오손을 정벌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곤막은 한나라에 구혼하기로 하고 이런 혼인동맹을 통해 흉노를 견제하고자 한다. 


원봉 6년(기원전 105), 공주를 곤막한테 시집보내 오손과 화친하기로 하니, 유세곤을 공주로 책봉하고는 그를 오손왕한테 시집보낸다. 이때 한 무제는 거마車馬와 황실 기물을 가득 실어보내는 한편, 부속 관리와 환관, 궁녀 등 수백 명을 파견하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오손국 감시용이었다. 이에 곤막昆莫은 유세곤을 우부인右夫人에 책봉한다. ( 《漢書·西域傳》에 이르기를, 세군공주가 출가 시에 한 무제가 승여乘輿와 황실 기물을 잔뜩 하사하고, 관속과 비서진 수백 명을 따르게 해서 보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흉노 역시 오손국에 대한 외교정책에 돌입하니, 그 국왕 역시 딸을 오손국에 시집보내니, 오손에서는 그를 좌부인左夫人에 책봉한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공장들을 보내 오손국 궁실을 조영케 하는가 하면 격년으로 사절을 파견해 오손국 내부를 감시하게 한다. 

태초太初 2年(기원전 103), 昆莫獵驕靡가 거세去世하니, 그의 손자 岑陬軍須靡繼가 왕위를 계승하고는 그들의 관습에 따라 할아버지 여인인 유세곤을 첩으로 들이고자 한다. 이에 반발한 유세곤은 한나라 조정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귀국을 요청하나, 한 무제는 그곳 습속을 따라야 한다며 거절하니, 이에 유세곤은 잠추岑陬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태초 3년(기원전 102)이 소부少夫라는 딸을 낳는다. 

태초 4年(기원전 101), 오손공주 류세군이 거세하자 한나라에서는 화친공주和親公主 정책에 따라 군수미軍須靡 잠추한테 시집보내니, 그를 오손에서는 유세군 전례에 따라 우부인右夫人에 책봉한다. 匈奴에서 보낸 공주는 좌부인을 삼았다. 

《漢書·西域傳》에 의하면, 오손공주가 이 시를 지은 때는 귀국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때라고 한다. 

이런 그의 일생은 왕소군이 그랬듯이 후세 시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를 주제로 하는 문학을 쓰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그를 소재로 읊은 시들을 일별하면 다음과 같은 시작들이 있다. 


烏孫公主(宋 劉克莊)
玉座吞聲別,氈車觸目悲。
如何漢公主,去作虜閼氏。

墨梅其一(金 劉仲尹)
痩損昭陽鏡裏春,漢家公主奉烏孫。
淚痕滴盡穹廬月,誰道神香解返䰟。

烏孫公主歌(明 王世貞)
妾人自慚兮,諸侯女。
謬托嘉名兮,漢翁主。
寵我餌我兮,作逺婚。
匈奴賤種兮,號烏孫。
昆彌老兮,非我偶。
少王壯兮,實餘後。
念欲一死兮,為國憂。
失身苟活兮,貽國羞。
丞相何人兮,爵通侯。

烏孫公主歌(明 孫蕡)
咽咽復咽咽,羊車鳳輦恩光絕。
新新復新新,駝裘貂帽來相親。
昔為花月漢宮女,今作風沙胡地人。
漢宮胡地何分別,人生過眼如一瞥。
彩雲易消月長缺,奈何嬋娟涕如雪。
且喜華夷罷戰爭,天南天北樂升平。
一堆紅粉壟頭葬,百萬兒郎邊上生。
漢宮剩有三千女,豈憚邊庭有強虜。
從此龍泉不用磨,但從天下選嬌娥。
銀鞍白馬金橐駝,琵琶弦索聲相和。
葡萄酒綠朱顏酡,婿家兒孫日日多。
年年只報烽火息,莫問嬋娟傷綺羅。

公主和戎(明 黎景義)
鳳館輸唐好,龍庭降漢恩。
虛圖懷赤子,左策嫁烏孫。
六轡來氈韋,三周御毳幡。
春花辭月黯,朔雁帶霜繁。
簫轉樓中韻,笳鳴塞上冤。
金城空墮淚,青塚不歸魂。
帝室忘深恥,天驕敵至尊。
幸逢明盛日,非類絕求婚。

烏孫公主(明 屈大均) 
騊駼為食酪為漿,公主悲愁思故鄉。
黃鵠歸飛不可得,歲時一會烏孫王。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