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조선후기 지성사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있다.
필자도 조선후기의 흐름 자체를 이유 불문 부정적으로 보거나
자기 비하적 비판은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조선후기 지성사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느냐의 문제가 있겠다.
예를 들어
숙종대 이후 왕실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소위 황극에 대한 강조, 탕평책 등은
그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노론 중심의 세계관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자체는 근대적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오랜 유교의 역사에서 흘러오던 두 개의 큰 세계관 중 하나는 이쪽이 잡고 다른 하나는 저쪽이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실학-.
이른바 중농학파의 토지개혁은 지나친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주장 역시 오랜 유교의 역사에서 늘상 해왔던 이야기이고
이를 근대적 맹아라고 부르기는 전혀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서양의 중세를 마냥 암흑시대로 보기보다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흐름이 역사가들 사이에서 있었던 것은 안다.
그런 흐름을 한국사의 전근대에도 적용해 보았다면 필자도 할 말은 없겠는데
문제는 그런 수준을 넘어 조선후기 지성사적 흐름에 대한 탐닉, 도취,
실학사의 컨텐츠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 시대에 이어지는 19세기 조선의 상황을 정확히 평가하는데 크게 장애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근대화가 늦어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전 세계를 풍미하던 근대적 사상의 흐름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전혀 동참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런 흐름을 지금의 조선후기에 대한 시각으로는 전혀 설명을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19세기에는 정조의 개혁, 실학자의 개혁을 실패하면서 식민지로 들어가는 것으로 나오는데,
다시 한 번 재고를 촉구해 보는 것은,
18세기 정조와 실학자의 주장이 근대적 사상이 맞기는 맞겠느냐 하는 것이 되겠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정조나 실학자의 주장은 유학사에서 흔하게 있는 현실 개혁론의 범주에서 전혀 못벗어나 있고,
이것은 같은 시대 중국이나 일본의 예를 비교해 보아도 근대적 사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말이다.
18세기 사상사 흐름의 해석에 관한 한 현재의 판이 완전히 잘못 짜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오류는 단지 그 시대의 해석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설정하는 데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농파 실학자의 토지개혁론을 근대적이라고 보니,
20세기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을 충분히 긍정적으로 해석을 못하는 것이다.
양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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