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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서울역사편찬원장 이상배

"영건일기 번역으로 경복궁 중건 과정 세세히 알게 됐죠"

송고시간 | 2019-07-10 06:30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 "서울은 600년 아닌 2천년 수도"


얼마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정년퇴임하는 김창겸 선생 소식을 인터뷰 형식을 빌려 전했거니와, 

이번 주인공인 상배 형 역시 나로서는 언제나 엇비슷한 자리에 놓고 생각하는 역사학도다. 




두 사람 모두 이른바 대학교수가 아니며, 역사학 관련 기관에 젊은 시절 투신해 생평을 그곳을 터전으로 일하는 연구자라, 개좆도 내세울 것 없으면서, 거덜먹이며, 연구업적이라고 해봐야 체로 걸러내어 버리면 한 줌 안 되는 대학교수 놈들과는 결이 다르다. (놈에 대해서는 아래 상술)


저들은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현장 실무형이라, 무엇보다, 우리네가 언제나 이용하는 이른바 사료정리에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쌓은 형들이다. 저들의 헌신없이 무슨 역사연구가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언제나 저런 사람들이 제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은 이리 하면서도, 그 담당기자로서 언제나 부채 같은 것이 있었으니, 말과 달리, 저들을 제위치에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그 어떤 흔적도 내가 남기지 못했다는 그런 자괴감이 언제나 있다. 


이번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만 해도, 그것이 등재되자, 그것이 내 덕택이라고 나서는 자가 없지는 않거니와, 개소리다. 그것을 상품으로 가꾸고 그것을 판매대에 올려, 그것을 마침내 수출상품으로 국제무대에 내보낸 이들은 흰색 도포차림 유림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띠는 분홍색 양잠을 걸친 할머니도 아니며, 그런 책 혹은 논문을 쓴 고건축학도 대학교수도 아니다. 


그것은 문화재청을 비롯한 이름 없는, 아니, 이름을 결코 남기기 힘든 실무진들이 이룩한 피와 땀방울이다. 지들이 아무리 잘났네 거덜먹하지만, 이들이 없이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내가 아는 상배 형은 그런 사람이다. 그의 이름으로 책 혹은 논문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로대, 그는 언제나 이름이 여러번 바뀌어 지금은 서울역사편찬원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한 이 기관에 온통 열정을 불살랐다. 물론 열정을 불살랐다 해서, 그 편찬원장으로서의 이상배가 어떤 사람인가는 나는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기관장으로서의 이상배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중히 여기는 까닭은 그런 사람이, 이른바 실무진으로서, 그런 기관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 마침내 그 최고 수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며, 그 의미 자체를 허심히 보아 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기관장을 한다 해서 그것이 궁극적 제대접이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들이 노린 것이 기관장은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저런 자리는 외부공모니 하는 각종 이름으로 돌이켜 보면 언제나 낙하산이었고, 그 낙하산은 언제나 교수놈들이었으며, 더구나 그런 교수놈들은 생평 대학에서 갖은 안온한 생활 누리다가 정년퇴임까지 한 놈들 차지였다. 퇴직하고도 연금만 매달 꼬박꼬박 400만원을 넘게 받는 대학교수 영감탱이 놈들이 저린 자리를 꿰차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이런 대학교수들은 언제나 놈이라고 부른다) 


그 전통을 이상배가 깬 것이며, 그것을 나는 결코 허심히 넘길 수는 없다. 


그런 형한테 내가 무엇으로 갚음할 수 있을까,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 근자에 이 인터뷰에서 다룬 영건일기 번역건이 있어, 그래 이때다 하고는, 담당기자한테 그에 즈음한 인터뷰를 부탁한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부장이 되어서, 이제야 겨우 그 편린 하나를 풀었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듣자니 1년 반전인가? 그가 공모를 통해 편찬원장에 취임하자, 그의 모교 강원대인지 아니면 그 사학과인지에서는 플랭카드를 붙였다고 한다. 그 자신이야 쑥스럽기 짝이 없었겠지만, 이 일은 강원대 사학과에는 낭보였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꿈이 많았다. 사석에서 언제나 서울학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책을 쓰겠다"고 한 것만 몇 종이다. 물론 그 그런 책 두어 종을 내긴 했지만, 아직까진 공수표가 적지 않거니와, 이젠 편찬원장으로서 그런 꿈을 어느 정도 풀기 위한 작업을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