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날이니만큼 대세에 편승해 몇 마디 말을 보태려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드는 느낌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나름 믿고 챙겨주던 동료들이, 부서원들이 어느 순간 본인을 따르지 않고 전혀 다른 조직이나 인물을 따른다면 그 허탈함과 외로움은 어느 정도일까.
대통령이, 참모총장이, 헌병감이, 사령관이 직속 부하에게 정당한 지시를 내렸음에도 그 지시는 허공에 날릴 뿐이다. 일반 조직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상명하복이 원칙인 군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예비역들은 알겠지만 입대 하자마자 외우는 직속 상관 관등성명이라는게 있다. 이를 따라 올라가면 내게 명령을 내리는 계통을 알 수 있기에 직속 상관의 명령은 철칙으로 따라야 한다고 배운다.
명령은 더 위의 직속 상관만이 바꿀 수 있고 그럴 때는 당연히 더 위 상관의 명령이 우선이다. 보통 대대장을 포함해 대략 5~6단계면 참모총장에 다다른다. 직속 상관이 아니면 속칭 '아저씨'다. 예우는 하지만 내 직속 상관의 지시보다 우선할 수 없다.
영화는 이 시스템이 무너진 날을 다룬다. 직속 상관 수경사령관의, 특전사령관의 명령을 직속 부하들이 듣지 않는다. 명령이 부당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따르기 때문이다.
사령관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수경사 30경비단은 경복궁 경회루 북쪽 태원전 권역에 있었다. 영추문 돌담과 지금 고박 정문이 자주 나온다.
본래 종친부와 사간원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경성의전 부속병원으로 지어진 건물이 당시에 보안사였다. 12월 14일에 그 유명한 단체사진을 찍은 곳으로 지금은 국현 서울관이다.
당시 중박은 지금 민박 건물을 쓰고 있었다. (영화상 설정이지만) 이래저래 경복궁 포격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지휘부가 너무도 쉽게 포기한 육군본부에는 현재 전쟁기념관이 들어섰고, 취사병까지 긁어모은 104명의 장병과 전차 4대만을 세워놓고 진압 실패의 울분을 토했다던 수도경비사령부 연병장은 남산골 한옥마을로 바뀌었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던 청와대조차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개방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날 서슬퍼렀던 현장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기관들이 자리잡았다. 중앙청에 중박이 옮겨온 것을 시작으로 작년에 청와대가 개방되기까지 대략 40년이 걸렸다. 이 공간들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화의 향기가 계속되길 바란다.
#내사산안쪽이중요하던시절
#거기가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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