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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山雜談

떠난지 3년, 여전한 나의 우상 디에고 마라도나

by taeshik.kim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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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분야에서 역사상 최고를 뽑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그러나 부질 없으면서도 결론은 나지 않는) 대화 주제이다. 축구라는 종목에서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를 뽑으라면 으레 브라질의 펠레가 수위에 꼽히겠으나 그 다음 순위는 역시 사람마다 주관이 다르기에 여러 명이 오르내릴 것이다. 

내게는 그 사람이 마라도나였다. 어릴 적에도 펠레는 이미 "축구 황제"라 불렸음에도 나는 펠레가 뛰는 경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독일 베켄바워와 포르투갈 "흑표범" 에우제비오, 골키퍼 야신 정도가 훌륭했던 선수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요한 크루이프나 바비 찰튼은 알지도 못했다. 하다 못해 야신의 국적이 소련이라는걸 알고 먹은 충격은 대단했다.(최고의 골키퍼가 공산당이라니...ㄷㄷㄷ)

그에 비해 마라도나는 그가 경기하는 것을 직접 보기도 하였거니와 위에 열거한 사람들이 이른바 '흑백의 시대'에 갇혀있던 데 반해, '총천연색'으로 신들린 움직임을 보여준 사람이다. 86년 월드컵 한국 대 아르헨티나전은 물론, 유명한 "신의 손" 사건도, 그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던 모습도 생생하다.  
 

서독을 물리치고 월드컵을 들어올리는 마라도나

 
우리 선수랑 차이 나지 않을 정도의 단신임에도 공이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 아주 적극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를 전담 마크한 허정무가 '태권축구'를 했다는 게 지금도 회자되니 말이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펠레랑 마라도나 중에 누가 더 잘하냐는 것은 끝나지 않는 논쟁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들의 우상이자, 그보다 체격 조건이 좋았던 차범근은 아쉽게도 그 상대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구 반대편 꼬꼬마들도 그건 알 수 있었다. 

80년대 내내 유행한 뽀글 파마 역시 그의 이름을 거쳐갔다. 같은 헤어스타일이건만 "마이클 잭슨 파마"에서 "장정구 파마"를 거쳐 "마라도나 파마"가 되었다. 갑자기 축구 잘하는 남자애들이 머리를 볶았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지긴다.

 
유명 게임(세이부컵 축구)에도 아르헨티나 주장으로 등장해 오락실에서조차 인기였다. 우리는 마라도나를 직접 조작해 우승컵을 들기도, 반대로 그 현란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오락실에만 가면 매일 마라도나를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마라도나 붐'이었다.

90월드컵에도 아르헨티나를 준우승으로 이끈 그였지만 이후 그는 약물 스캔들 같은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하고 남아공에서는 감독으로 다시 한국과 만나 승리하기도 하였으나 선수 시절 만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베켄바워나 크루이프가 선수시절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성공한 지도자 생활을 한 것을 보면 많이 아쉽다. (펠레야 뭐 존재 자체가 너무 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축구를 상징하는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의 은퇴 이후 카니자, 바티스투타, 베론, 오르테가, 그리고 현재 축구 신이라 불리는 메시를 배출한 아르헨티나는 단 한 번도 월드컵 우승을 한 적이 없다. 펠레 없는 브라질과 베켄바워 없는 독일이 우승을 밥 먹듯 하는 것에 비교하면 그의 존재감이 더욱 커진다. 

환갑 때까지도 별명이 "악동"이었다. 불같이 급한 성격 만큼이나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하늘에서 마음껏 누비고 달리길.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1960.10.30.~2020.11.25.)
(2020. 11. 26) 
 
***
 
그가 세상을 떠난지 3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아르헨티나와 메시는 드디어 월드컵 우승을 맛보았고 그가 뛰던 당시 우승한 이후 한 번도 우승을 추가하지 못한 SSC 나폴리도 김민재의 활약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생전에 이 모습들을 보았다면 그는 분명히 눈물을 흘렸을 텐데 말이다.
 

문제의 신의 손 장면이 나온 잉글랜드 전

 
시간이 지나면 기록은 깨지기 마련이고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은 새로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지금의 한국 국가대표 스쿼드라면 전성기의 마라도나라도 보다 수월히 막아낼 수 있을 거다.

앞으로 그를 뛰어넘는 신성이 계속 나타나 마라도나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자리에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 기억 속의 그는 언제나 최고의 선수로 남아 있을 거다.

#DiegoMaradona (1960.10.30.~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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