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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예전에 김단장께서도 쓰신 부분인데,
우리나라 서원훼철은 밑바닥 부터 다시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서원이 백성을 괴롭힌다. 따라서 없앤다.
이런 점에서 서원 훼철에 대한 한국사의 기술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전부일까?
일본의 경우, 메이지 시대에 왜 막부학문소, 번교, 사립학교, 데라코야를
다 없애지 않고 근대교육기관으로 뼈다귀까지 쪽쪽 뽑아 전환하려 했을까?
바로 돈 때문이다.
메이지 정부를 정의하면 청일전쟁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 쥘 때까지도
극도의 재정 결핍에 시달렸다고 보면 된다.
학교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었는데,
학교를 지으려면 부지, 교원, 그리고 학교 건물 등이 필요한데
뭐 하나 돈이 안드는 것이 없었다 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쉬운 방법은 메이지시대 이전의 전근대적 교육기관의 부지, 교원,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일본의 근대화 초기 교육기관은 모두 이렇게 전근대적 성격을 그대로 가진채 이름만 바뀌었다.
조선의 대원군-고종의 시대
서원훼철은,
그냥 문짝에 못만 박은 것인가 아니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몽땅 다 털어서 대원군 일파가 사용한 것인가.
서원이 경복궁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
이 점은 서원훼철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명해야 할 부분이겠다.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대원군이 헐어 경복궁으로 바꿨다면,
그는 국가의 미래라 할 고등교육기관으로 전용할 재산을 털어 왕의 궁궐을 짓는데 쓴 셈이다.
진실은 무엇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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