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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제국대학의 기원 (2): 동경대학

by 초야잠필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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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쓴 것 처럼 동경대학은 메이지 이후 신정부가

막부가 운영하던 3개 기관을 합쳐서 탄생하였다. 

창평판학문소昌平坂学問所、개성소開成所、의학소医学所

이 3개 기관이 그것으로, 

이 중 昌平坂学問所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3개 기관이라고 했지만, 위 세 기관 중 막부 당시 위상에 있어 昌平坂学問所와 나머지 두 기관은

위상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에도 막부 초기에 임라산 하야시 라잔 林羅山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나라 강항과 교류하여 일본 성리학의 "사실상의 개조" 역할을 한 사람이 후지와라 세이카 藤原惺窩 인데, 

이 후지와라 세이카의 교유를 받은 사람이 바로 하야시 라잔이다. 

하야시 라잔이야말로 성리학을 에도시대 일본의 관학으로 만든 절대적 공로가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이에야스로부터 동경 우에노 일대 땅 5천 평과 기부금을 희사받아 만든 가숙家塾이 바로 창평판학문소昌平坂学問所의 기원이다. 

1690年(元禄 3年)에는 막부가 간다 일대 땅 6천평을 더해 여기에 대성전大成殿을 짓고 이를 유지마세이토 「탕도성당湯島聖堂」이라 하게 되었고,

하야시 라잔의 집안은 대학두大学頭 (조선의 좨주 祭酒 혹은 대제학과 같은 자리)라는 관직을 대대로 세습하게 되었다.  

1790年(寛政 2年)에는 막부가 성리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문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이때까지도 하야시 집안의 가숙이었던 湯島聖堂를 막부 직할기관인 「昌平坂学問所」로 승격시켰는데, 

이때부터 이곳은 막부의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우리의 성균관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에도시대 전성기의 유지마 세이토. 대성전을 중심으로 행단문, 입덕문 등이 있다. 이 방대한 부지에서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사실상 관학의 위치를 누리던 유지마 세이토는 메이지 유신 이후 동경대로 발전한다. (C) 위키


이 유지마 세이토라는 곳은 지금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동경에 도착하면 아마 대부분 우에노에서 내릴 텐데 여기서 전철을 타고 오차노미즈 역으로 가면 그 일대가 모두 막부시대 유지마 세이토, 昌平坂学問所가 있던 곳이었다. 

UR 오차노미즈역에 내리면 유지마세이토는 바로 옆이다. 사진의 아래쪽 일대가 막부시대 昌平坂学問所의 부지였다. (C) 신동훈
유지마세이토 입구. 앙고문. (c) 신동훈
입덕문 (c) 신동훈
대성전 가는 길. 막부시대에도 이곳은 학문의 중심지였다 (c) 신동훈
행단문 (c) 위키
유지마 세이토 대성전. 매우 잘 지은 건물이다. 꼭 가서 한번 보시기를 (c) 위키
유지마 세이토는 "일본 근대교육 발상의 지地"다. 일본사에서 유지마 세이토의 위상을 볼 수 있다. 한국은 문교의 역사 수천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근대교육 발상의 지는 어디인가?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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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학의 기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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