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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신론 讀史新論

선덕여왕 시대 모란도 꽃향기가 진동했다

백모란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편은 글자 그대로 기이한[異] 이야기 엮음[紀]이라, 이에는 주로 역대 왕과 관련한 기이한 이야기를 하나씩 정리한다. 개중 신라 선덕여왕에 대해서는 '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라는 제하로 그와 관련한 일화 세 가지를 거론했으니, '지기삼사(知幾三事)'란 글자 그대로는 그렇게 전개되리라는 기미 혹은 낌새[幾]를 미리 알아채린 세 가지 일이라는 뜻이다. 흔히 의문사 '어찌'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幾(기)'라는 말에는 기미, 낌새라는 다른 뜻도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이 미리 낌새를 알아차린 세 가지 사건은 무엇인가? 


첫째가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홍색·자색·백색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더불어 그 씨 석 되를 보내오자 그 의미를 알아차린 일이고, 둘째는 영묘사(靈廟寺)라는 지금의 경주 지역 사찰 옥문지(玉門池)라는 연못에서 겨울임에도 개구리가 떼지어 울어대자 그것이 백제의 내침에 대한 예고 혹은 경고임을 알았다는 것이며, 세번째는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이 저명한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속설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모란꽃이 향기가 없다는 말은 잘못이다. 


지금 모란이 한창인 시절이다. 낮 최고기온 28도까지 치달았다는 오늘 서울시내도 보니 곳곳에 모란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쪽은 아마 지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백모란



내 경험에 의하면 모란은 언제나 이럴 때 만개한다. 여름을 방불하는 봄 날씨가 되면 봉우리를 터뜨리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한지 대략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힘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만개한 모란숲에서는 그 특유한 향내가 진동을 한다. 그런 향내에 많은 이가 "어? 모란이 향기가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거니와,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거대한 뿌리가 바로 저 《삼국유사》가 저록(著錄)한 선덕여왕과 모란에 얽힌 일화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이리 생각할 수도 있다. 선덕왕이 살다간 신라시대 모란은 향기가 없다가, 나중에 향기가 있는 품종이 등장 혹은 개발되지는 않았던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개소리라, 그때도 모란은 꽃이 향내를 진동했다. 그렇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저 이야기에 모란꽃이 향내가 진동한다는 전제를 깐 까닭이다. 


백모란



저 이야기를 보면, 


선덕여왕은 당 태종이 홍색·자색·백색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오자 왕이 그림에 등장하는 꽃을 보고 말하기를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 하면서 씨를 정원에 심도록 명했거니와 꽃이 피었다가 떨어질 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初唐太校勘 294宗送畫牧丹三色紅·紫·白以其實三升. 王見畫花曰, “此花定無香”, 仍命種於庭. 待其開落果如其言. 


고 한다. 이를 보면 모란꽃 자체가 본래 향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모란꽃은 향기가 진동해야 하는데, 하필 당 태종 이세민이 꽃을 피워도 향기가 없는 종자를 골라 보냈다는 뜻이다. 


이는 무엇보다 선덕여왕 자신이 너무나 잘 알았다. 세 가지 색깔로 그린 모란꽃 그림을 보내왔는데, 꽃이라면 향기가 나고, 그 향기가 바로 나비를 불러들이는 법이어니와, 그런 까닭에 나비가 그림에 있어야지만 그것이 없다는 점을 예리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백모란



같은 이야기에는 이세민이 왜 이런 짓거리를 했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당시에 여러 신하가 왕에게 어떻게 꽃과 개구리 두 가지 일이 그렇게 될 줄을 알았는가 여쭈니 왕이 대답하기를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는 바로 당나라 황제가 내가 짝이 없음을 희롱한 것이다"고 했다. 

 

當時群臣啓於王曰, “何知花蛙二事之然乎.” 王曰 “畫花而無蝶知其無香斯, 乃唐帝欺寡人之無耦也. 


이에서 중대한 사실은 이세민이 하필 꽃 향기가 없는 모란씨를 보낸 이유를 "당나라 황제가 과인에게 짝이 없음을 기롱한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이에서 보듯이 이 이야기에는 모란이 애초에 꽃 향기가 없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점은 그럼에도 이세민이 하필 향기 없는 모란씨를 선덕한테 보냈다는 것이며, 그것은 선덕한테 남자가 없음을 기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단순히 선덕한테 남자가 없음을 말함인가? 


모란씨 석 되를 뿌려 그것이 싹을 틔워 꽃이 피었는데도 향기가 없고 나비가 날아들지 않았다? 


볼짝없다. 


단순히 남자가 없음을 말함이 아니라, 남자가 있어 그와 쿵쿵짝쿵쿵짝을 했는데도 자식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백모란



그렇다면 하필 색깔이 다른 모란씨 석되인가?


역시 볼짝없다. 


남자 셋을 들였는데도 자식, 특히 후사할 아들을 얻지 못했다는 말 아니고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랴? 


이리 풀면 너무나 간단한 것을 아무도 풀지 못했다. 


*** 삼국유사 원문과 번역은 아래 사이트 참조 


http://db.history.go.kr/introduction/intro_s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