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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박물관이 풀어헤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근묵槿墨

by taeshik.kim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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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창 오세창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말년 제자이기도 한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아들이다.

본관은 해주로, 5대에 걸쳐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세창 아버지 오경석. 이 사진에 오세창은 이런 설명을 붙였다. 아버지가 42세인 고종 9년 임신년(1872) 사진으로, 세창이 기록한다. 북경 프랑스 공사관 참상관인 매휘립梅輝立이 찰영하였고 내가 동경에 있을 때 복사본이다. 하지만 이런 증언은 약간의 착란이 아닌가 한다. 오경석이 북경으로 가서 프랑스 외교관 메이어스를 만난 시점은 위창이 말하는 것보다 2년 늦은 1874년일 것이다.

 

촬영시점이 1872년이면 상당히 빠르다.




집안의 특성상 서울 중부 시동時洞(지금의 청계천 2가) 집에는 당대 명성이 있던 학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오세창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가학을 전수받고, 최고의 인사들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위창 수집 남공칠 간찰

 

위창 수집 이서구의 조경감 앞으로 쓴 편지



17세가 되던 1880년, 사역원 시험에 합격하여 대를 이어 역관이 되었고, 이후 188년 박문국 주사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정3품에 올라 우정국 통신국장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위창 수집 유한지 글씨

 

위창 오세창 선생 상. 조환 57x42cm, 2021. 따라서 이 초상은 위창을 직접 대면한 작품은 아니다.



1898년(35세) 개화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6년(43세) 손병희 등과 귀국하여 만세보萬世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하였고, 이후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1910년(47세) 한일합병 이후 서예와 전각에 전념하며, 고서화와 인보에 관한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

1919년( 56세)에는 3 : 1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2년 8개월을 복역하였다.

1921년(58세)에 출옥한 이후에는 사회활동을 피하고 서예와 전각 작품의 제작 및 고서화 자료의 편저 작업에 몰두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이 조선왕조의 옥새를 대한민국에 인계할 때 국민을 대표해 인수를 받기도 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 김구, 여운형 등이 미군정을 자문하기 위해 결성한 '민주의원 28인' 중 한 명에 속하게 되었다.



오세창의 간찰과 사진. 이 중엔 추사체를 혹평한 편지도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을 갔다가 1953년 4월 16일 대구 대봉동에서 9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그의 장례는 대구에서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근묵槿墨》은 총 34책으로 된 첩장본으로 오세창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선인들의 묵적 중에서 서간류 소품을 수집하여 엮은 것이다.

80세가 되던 1943년에 근묵 표제를 셨다.

근묵은 부친 오경석과 부친의 스승인 김정희 영향을 받아 완성된 결과물로, 오세창의 감식안까지 더해져 완성되었다.


오세창의 전서



그의 유족은 1964년 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 근묵을 기증했다.

근묵은 1천136명에 달하는 인물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옛 사람의 사생활 실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조선시대 서간 형식 변천과 수결 양상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다.

2023년은 오세창 서거 70주년, 근묵이 만들어진 지 80년이 되는 해다.

그가 완성한 필생의 역작인 근묵은 2023년 5월 3일 보물로 지정 예고되었다.


위창이 잔뜩 긁어모은 간찰들



따라서 이번 특별전시에서 근묵의가치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 코너를 마련하였다.

인물들의 필적과 실생활이 담긴 내용, 오세창이 부기한 작자 이름, 생몰연대 등의 설명 등 다채로운 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긁어 모으려면 엄청난 부자거나 잘 후려치거나 둘 중 하나다.

 

이상은 성관대박물관에서 근자 개막한 성균관의 보물 특별전을 개막하면서 비름빡에 붙인 안내판인데 내가 약간 손질했다.

이 전시장을 점심시간을 빌려 잠깐 다녀왔다.

번거롭게 하기 싫어 기별도 없이 한가한 시간에 몰래 쳐들어갔다가 하필 전시장에서 손님(손님이라 해 봐야 하영휘 선생 꼴랑 한 명이었다만)을 안내하던 김대식 관장한테 걸려 한 시간 정신집체 교육받았다.

그의 열정은 혀를 두르게 한다. 대학박물관 최초 비교수 관장답다.

이 특별전은 실상 #오세창 현창전이라 불러야 한다. 그만큼 이번 전시에서 오세창 비중이 압도한다.

근묵槿墨이란 간단히 말해 한국의 묵적墨跡이란 의미다. 구한말 이래 무궁화라는 말은 곧 조선 혹은 한국을 상징하는 말이 되는데 그 무궁화를 의미하는 槿을 제목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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