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기억은 없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그가 한 마리 소를 팔아서 상경했는지, 아니면 그걸 끌고서 가출했는지는 내가 기억에 없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성공한 기업가가 된 정주영이 노구를 이끌고, 그리고 아산농장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끌고서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참말로 대담하기가 무쌍하기만 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춤을 추었고, 김영삼-김일성간 첫 남북정상회담은 그 성사를 불과 한달 앞두고 김일성이 죽은 바람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런 장면은 김대중-김정일이 풀었고, 이후 냉각기를 거쳐 근자 도널드 트럼프까지 개입한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거니와, 정주영이 주도한 저 민간 남북협력 물꼬는 여타 정치권이 주도한 움직임과는 사뭇 달라, 무엇보다 금강산 관광 성사라는 실질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나는 본다.
이벤트 이상이었다는 뜻이다. 무수한 정치 이벤트가 쇼라는 틀을 벗어나긴 힘들었는데, 정주영이 뚫은 길은 실질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시할 만하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민간협력 물꼬 역시 남북한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없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정치권 주도 납북협력 연장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민간이 주도한 것이기에 그 실질은 좀 더 오래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2차에 걸쳐 저렇게 올라간 소들이 다 어찌 되었는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가난은 소까지 굶기는 법이다. 혹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던 북한에서 다 잡아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웃기도 하는데, 모르긴 해도 일시에 넘어간 소 천마리(정확히는 천한마리)를 감당하기가 북한으로서도 못내 곤혹스럽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 소떼방북은 내가 문화부장 시절에 차후 쓰겠다고 담당기자가 보고한 사안이라, 다만, 그 방북 시점이 1998년 6월 16일이었던 관게로다가 그 무렵이 되어 쓴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쓴 듯하다.
저 담대한 계획을 실행할 적에 정주영은 이미 여든셋 상노인이었다. 역사적인 판점점을 통한 소떼 방북 당시 거둥이 상당히 불편했으니, 그것을 감행하고서 불과 3년이 채 되지 아니한 2001년 3월 21일 향년 87세로 눈을 감았다. 타계 직전 그와 그의 현대그룹은 사정이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2000년 5월, 명예회장인 그 자신을 포함해 아들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하면서 그 자신은 명예회장직을 사퇴했지만, 현대자동차를 이끌던 아들 정몽구는 반발하며 퇴진을 거부하는 소동이 있었다. 대북사업 투자는 용기가 가상했고, 그 계획이 담대하기는 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룹 단위 부동의 1위 현대 그룹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지 않았나 기억한다.
그의 패착 중 하나가 정치권 입문이었으니, 19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그는 김영삼과 맞섰다가 처참히 패배하고서는 김영삼 집권 뒤에는 내내 그룹 명운이 걸린 경영 압박을 견뎌내야 했다. 김영삼은 승자의 아량을 몰랐다. 버르장머리 뜯어고치겠다고 현대를 박살내겠다는 야욕을 노골화했다.
그런 압박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저 방북사업을 시작했으니, 나는 때가 좋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걸 버텨내기에는 천하의 현대그룹도 그리 경영사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이 대북사업은 내내 부담이 되어 현대그룹이 삼성에 부동의 1위를 내어주는 빌미가 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고 저 담대한 소떼방북이 대표하는 시도가 실패했다 할 수는 없다. 그에서 뚫은 물꼬는 개성공단 건설운영 등으로 이어졌거니와, 물론 그런 일들이 당장 지금은 남북관계 경색이 최악으로 치달은 지금에서는 또 다른 평가가 나올지는 몰라도, 더 나은 미래를 가는 가교로 분명히 기록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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