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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호적과 다섯살 어린 제자 부사년

by taeshik.kim 202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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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호적

 

호적胡適(1891~1962). 그의 등장은 20년전 양계초梁啓超(1873~1929)의 그것이 그러했던 것처럼 혜성이었고 폭풍우였다.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의 기린아요, 벼락스타인 그가 미국 유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북경대학에 교수로 취임한 때가 26살이었다.

 

1922년 호적. 신문화운동 기수로 한창 주가를 날릴 무렵이다. 


1891년생인 그의 제자 중엔 두 살 아래인 1893년생 고힐강顧頡剛(1893~1980)이 있었고, 다섯살 아래인 1896년생 부사년傅斯年(1896~1950)이 있었다. 호적은 알았다. 이들 제자가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1954년 고힐강. 고사변학파의 주축이다. 


고힐강은 이내 고사변파古史辨派를 만들어 그의 문하를 떠났으나, 부사년은 단 한 번도 호적을 떠난 적이 없다. 부사년에게 축복은 중국 본토에서 호적 비판운동이 개떼처럼 일어나기 전에 죽었다는 점이다.

 

부사년


그가 죽자 호적이 부사년의 미망인 앞으로 편지를 썼다.

"맹진孟眞은 내게 진실로 참 잘해주었습니다. 그의 학업은 나보다 깊고, 중국 고서를 읽은 것 역시 나보다 훨씬 많았지만, 내게 편지를 쓸 때는 항상 그 자신을 '학생'이라 칭하기를 30년이 하루와 같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났을 때 늘 승강이를 벌이기도 하고 변론하기도 했습니다만,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하면 맹진은 그때마다 용감하게 나서 나를 대신해 변호해주었습니다. 그는 항상 '당신들은 호 선생을 욕할 자격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2018. 6. 20)

1958년 호적(왼)과 장개석. 1887년생인 장개석이 나이로는 4살 위다. 

 

맹진孟眞은 부사년이 사용한 字다. 아마도 이 편지는 1950년 부사년이 대만에서 사망하자, 미국에 체류하던 호적이 대만에 있던 그의 미망인한테 쓴 편지 중 하나로 기억한다. 국내 번역된 부사년 관련 어떤 글에서 발췌해둔 것인데, 출처 표기를 하지 아니해서 그것을 내가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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