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牛山 이은창李殷昌 선생이다. 그의 간단한 이력은 아래 우리 공장 기사를 참조하라.
송고시간 | 2019-07-26 17:55
1922년생이라, 선친보다는 1살 적은 양반이라, 기록적인 장수를 하고는 타계했다. 그 아드님이 같은 고고학도 길을 걸은 이성주 고고인류학과 교수요, 며느님이 이현주 부산박물관 학예연구관이라, 집안이 그의 대에 고고학 관련 학문에 투신했음을 본다.
1922년을 허심하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까닭은 연세대 사학과에 봉직하며 공주 석장리 발굴을 통해 한반도 중남부에도 구석기 문화가 존재함을 알린 손보기도 이해 출생이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창설과 더불어 그에서 많은 후학을 길러낸 김원룡 역시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윤무병은 이들보다 두어살 아래로 안다.
아무튼 한국고고학은 저들을 자생적 선하先河로 삼거니와, 우산 역시 당당히 맨땅에 헤딩하며 고고학을 개척한 1세대 연구자다.
저 부고기사에는 충분히 언급되지 아니했지만, 그는 실상 영남대박물관 창설자다. 이 대학박물관의 오늘이 있게한 1등 공신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내 영남대에서 밀려났다.
이 사건이 아니라 해도 그는 여러 이유로 한국고고학계에서 그 활약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이유는 단 하나, 그 빌어먹을 학력 때문이다.
우산은 1933년에 입학해 1939년 3월 31일 졸업한 비봉소학교 졸업이 전부다. 18살에 수업연한 6년이라는 소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소학교 졸업 이후 스무살 때인 1941년 3월 8일 소학교 교원시험에 합격했고, 그 직후부터 1968년 3월1일까지 소학교 중학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등으로 근무했다.
이런 그가 고고학에는 언제부터 투신하게 되었는지 확실치 않거니와, 아무튼 1967년부터 69년까지 충청남도문화재위원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60년대에 고고학에 투신했음은 분명하다.
1973년 9월 7일에는 이게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의 약력에 의하면 '대학(4년제) 조교수 자격 취득(고고학)(제357호)'라고 해서 조교수 자격을 취득했다고 한다. 이 시대 학위가 없던 대학교수들한테 박정희 정부가 요식 행위로 논문이랍시며 글을 제출하면 교수 자격증을 남발하던 시대가 있었는데(그 유명한 시인 미당 서정주도 그랬다) 혹 그 제도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그나마 그다지 이름없는 지방대학들에서 교수 타이틀로 생활한 것도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 하겠다.
일본 제국대학 유학파들인 손보기와 김원룡, 윤무병(아마 만주제국대학 출신일 것이다) 등이 서울대(손보기는 애초 교수생활을 서울대 사범대에서 시작했다)와 연세대, 국립박물관 등지에서 화려하게 한 반면(그 자신 유일한 일본 제국대학 정통 고고학을 계승했다고 자처한 김정학은 고려대를 거쳐 부산대로 내려갔다), 이은창은 변변찮은 학력이 계속 발목을 잡아 대학 부속박물관을 전전했다.
나는 언제나 조사원자격기준이 대표하는 현 한국문화재정책을 성토한다. 이 조사원 자격기준이 철저히 학력 위주, 그것도 말할 것도 없이 전공 위주라,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직업선택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원천에서 말살한다는 점에서 나는 시종일관 성토하거니와, 그런 조사원자격기준에 의하면, 생평을 고고학에 투신한 이은창이 다시 살아돌아온다 해도 조사원도 못되고, 고작 조사보조원밖에 되지 못한다.
저 조사원 자격기준에 의하면, 손보기도 김원룡도 윤무병도 조사원 자격조차 갖추지 못하게 된다. 왜? 저들은 결코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들 뿐인가?
저들에 이어 자생적 한국고고학을 개척했다는 2세대들도 거의 대부분이 자격기준 미달이라, 정징원 심봉근 등등은 석사학위 논문도 고고학이 아닌 일반 역사학이었다.( 내 기억에 정징원은 백자, 심봉근은 갑오농민운동이었을 것이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선생이 무자격자인데 무슨 더 말이 필요한가? ) 뿐인가? 저 자격 기준에 의하면, 지금 조사단에서 이사니 이사장이니 원장이니 하는 직책을 역임했고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 과연 몇 명이 자격기준을 충족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창 장학사업으로 논란인 이백규 영남문화재연구원 이사장...난 이 양반 현행 조사원 자격기준으로 현장조사원 2년조차 채우는지 의심한다. 흔암리 발굴 말고 뭘 더 조사했는지 모르겠다.
자승자박이다. 학력과 학과 위주 자격기준은 헌법에 위배한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구데기가 무서워서라는 이유로 더는 저 말도 안 되는 자격기준으로 꽁꽁 묶어 스스로를 옥죄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학력에 관계없이, 전공에 관계없이, 초등학교를 나와도, 아니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내가 고고학도이고 싶으면 얼마든 고고학도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고고학이 장사가 되는 학문이기 문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요새는 장사가 좀 되는 모양이라, 그러니 느닷없이 25억원이나 되는 돈을 장학사업 하겠다고 투척하겠지????) 누구든 고고학도가 될 수 있으면, 할 수 있게끔 하는 문은 열어놔야 한다.
소학교 졸업이 전부라고 이리저리 핑퐁당하는 제2, 제3의 이은창이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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