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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essay와 수필隨筆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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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7. 30 글이다.


서구와 본격 접촉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번역어가 생겨나고, 그에 따라 그것이 외려 거꾸로 그 번역어가 본질을 침해하는 일이 생겼으니, 그 대표가 바로 에세이에 대한 대응어 수필이다.

이 수필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뜻이요, 이는 신변잡기에 가까운 글을 말한다.

수필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는 근자에 홍승직 사단이 심혈을 기울여 완역한 남송시대 홍매洪邁라는 이가 이렇게 쓴 글을 집성해 완성한 《용재수필容齋隨筆》이라는 말에서 완연하거니와 중국 문학사에서는 수필 문학의 시원을 연 작품이라 평가되는 이 수필집 서문을 보면 당장 홍매는

"나이가 드니 게을러지고 독서도 줄었다. 생각 가는 대로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이라 수필이라 제목을 붙였다"

고 하거니와 이것이 동아시아 세계에서 통용하는 수필이다.

한데 이것이 어찌하여 양코배기 문학 분류 체계 중 하나인 에세이에 대한 대응으로 발명되었으니,

이 과정에서 놀라운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수필을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누니 이에서 홍매가 말하는 수필은 경수필이라, 중수필은 실은 논설이다.

에세이라는 말은 여러 함의가 있다고 알거니와, 하지만 주의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essay는 대체로 논문에 가까운 논설이라는 점이다. 


피천득은 에세이스보다는 수필가로 부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외국 친구들 이런 글에 essay on...블라블라 하는 글이 제법 있는데 이런 글은 예외없이 첫째 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가가 집필하고, 둘째 각주가 거의 없으며, 셋째 그 논조는 실로 장엄하기 짝이 없어 실은 declaration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에세이라는 말이 동아시아 세계에 상륙하면서 degrade한 대표적인 말이라 하겠다. 

물론 에세이란 말의 여러 함의 중에 굳이 우리가 말하는 경수필 개념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에세이라고 하면 논설성 무거운 글을 가르키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참고로 essay란 말을 Cambridge English Dictionary에서 

a short piece of writing on a particular subject, especially one done by students as part of the work for a course

라 정의한 대목을 보면, 이 경우 과제물이라는 성격에 비중을 두기는 했지만, 이 말 자체가 지닌 중후한 의미를 엿보는 데는 충분하다 하겠다. 

덧붙이건대 위키피디아에서는 에세이를 "generally, a piece of writing that gives the author's own argument"라고 하는 점도 이 말이 지닌 원초적인 의미를 짐작하는데 요긴하다 하겠다. 

우리가 말하는 신변잡기 소소한 글로서의 수필은 실은 미셀러니miscellany가 가깝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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