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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이란 게 왜적이나 무찌르려고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역항로라는건 평화시에는 국가의 조운항로가 되지만,
돈과 물자가 흐르는 통로라는 건 결국 해적이 듫끌게 되어 있다.
장보고가 청해진 설치의 명분으로 "해적소탕"을 들고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백제 멸망 후 신라는 한반도 서해안-서남해-남해를 지나가는 이 항로를 안정적으로 제압하지 못한 것 같다.
첫째는 신라는 고려-조선과 달리 이 항로를 따라 조운선으로 국가 재정을 유지한 것 같지 않아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었던 것 같고,
둘째는 서해안-서남해안-남해는 삼국통일전만 해도 신라의 정치적 영향력 바깥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당나라 해적" 소탕을 명분으로 했지만 사실 청해진 설치 이전에는 "당나라 해적"과 "신라해적"이 경합하고 있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나라 해적이 신라인을 잡아 노예로 팔아 넘겼다는 바로 그 시대에 신라해적은 일본 서부지역을 신나게 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해진이 완도에 설치되어 무역로의 안전을 확보하게 된 것이 결국 멀리 보면 고려-조선 시대의 조운로의 기원이 되지 않을까.
몽골침략기 강화도와 진도에 고려왕실과 삼별초가 자리잡았던 것도 결국 그 조운로 위를 타고 앉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고려시대에는 더 이상 이 지역에 해적이 횡행할 수 없게 국가권력이 이 항로를 확실히 장악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청해진의 역할을 국가가 맡기 시작한 것이 곧 고려시대의 船兵都部署, 조선시대의 수사가 통제하는 수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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