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식근론이라고 줄여 부르는 식민지근대화론은 개항 이후 조선의 집권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측면이 있다.
개항 이전 일본과 조선은 질적으로 다른 사회였고 이미 제국주의와 식민지 수준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집권세력이 설쳐봐야 식민지화는 정해진 길이었다는 논리다.
이 주장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성공적 근대화는 "일본의 시스템"을 이식했기 때문이 되겠다.
정말 그러한가?
19세기의 연구는 1차 사료에 좀 더 파고들어야 하고 선입견 없이 들여다 봐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본다.
우선, 에도시대-임란 후 조선후기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한국을 압도해가는 시대는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질적 차이이냐, 그게 문제가 되겠다.
일본의 화폐경제와 상업자본을 칭송하는 글은 많아도 정작 이 상업자본과 화폐경제가 근대산업자본의 선구였는가 하는 부분은 일본사 역시 매우 취약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미싱링크이고, 정말 에도시대 상업자본과 화폐경제 때문에 일본만 근대화에 성공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말이다.
필자는 개항 이전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양적 차이였다고 본다. 농업생산이 유일한 산업이었던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쌀농사의 생산성 차이가 양국의 차이를 갈랐던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사회 기층을 파고 들면 별 차이 없다는 뜻이다. 양국 농민들 삶을 보면 내가 하는 이야기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19세기 후반,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식민지화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앙샹레짐을 무너뜨리려는 에너지도 분출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지적 욕구도 덜하다 할 수 없는데,
무엇보다 개항 이후 거의 2세대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갈팡질팡, 우왕좌왕, 그야말로 허송세월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식민지화의 일차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누구인가? "대한국국제"에 나와 있는 것처럼 19세기 전기간에 걸쳐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던 고종, 순종, 대원군, 기타 "황족"들, 고종의 처가집, 등등 국가를 운영할 역량이 안 되면서 오로지 관심은 자기들 권력 유지에 집중해 있던 사람들에게 일차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필자는 19세기 말, 이런 우왕좌왕하는 판국에 뭐라도 해보려고 애쓰다 조국이 망한 후 식민지 하급관료로 전락한 당시 지식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수도 있겠지만, 당시 그들은 이 나라 주권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후계자가 바로 해방 이후 한국 각 분야에서 일본인이 물러난 자리를 차지하고 60년대 이후 근대화를 촉매한 사람들이 되겠는데, 이들은 혈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대한제국 관리의 후계라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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