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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신간] 《마니산 제사의 변천과 단군전승》(민속원 아르케북스 195)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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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제사의 변천과 단군전승》(민속원 아르케북스 195)
참성초塹城醮에서 마니산산천제摩尼山山川祭로


김성환 지음, 크라운변형판, 양장, 416쪽, 2021년 8월 20일 발행.


참성단 제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참성단 제사는 고려 전기 염주의 전성초례氈城醮禮를 이은 것으로 추측되는 마리산참성초례摩利山塹城醮禮에서 시작되었다.

13세기 전반 몽고 침입을 피해 단행된 강화 천도로 개경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제사 체계는 강도江都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또 원종 5년(1264) 국왕의 친초親醮 이후 참성초례는 주목되지 않을 수 없었고, 매년 봄가을로 설행設行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도교의례임에도 국가제사의 소사小祀의 예에 따라 운영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점차 유교화儒敎化하는 과정을 겪다가 임진왜란 이후 폐지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오례의五禮儀를 적용한 마니산산천제摩尼山山川祭가 참성초제塹城醮祭를 대체하였다.

마리산참성초제摩利山塹城醮祭는 어떻게 지내졌을까?

참성초제는 매년 봄가을로 2회 지내는 정기 초제와 비를 빌기 위해 지내는 부정기적인 기우초제가 있었다.

3일치재로 이틀의 정재正齋와 하루의 초례醮禮로 이루어졌다. 초례(초제)는 정재 이틀째인 늦은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지내졌다.

제관은 초제를 주관하는 참성초행행사와 이를 보좌하는 헌관, 그리고 초제 전반의 실무를 맡은 전사관 각각 1명씩으로 구성되었다.

제수祭需를 진설하고 초제를 보조하는 집사(배단) 2명도 있었다. 참성단 내단(상단)에는 상제上帝 4위, 외단(중단·하단)에는 28수宿를 비롯한 91위의 성신星辰를 모셨다.

이 신神들은 조선 전기까지 나무로 만든 신위판神位版로 모셔졌지만, 조선 중기에는 지방紙牓으로 모셔 졌다가 초제를 마친 후 소지燒紙되었다.

※ 자세한 내용은 이 책과 민속원 홈페이지 참조

http://www.minsokwon.com/

:: 민 속 원 ::

www.minsokwon.com: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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