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맹식 선생이 소장을 하던 시절이니 참 오래되었다. 벌써 18년이 후딱 지났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崔孟植)는 경주 효불효교지(孝不孝橋址, 일명 日精橋址)에대한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ㅇ 일 시 : 2003. 3. 14(금) 14:00
ㅇ 장 소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921-1번지 발굴조사 현장
ㅇ 조사기관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ㅇ 조사기간 : 2002. 11. 14 ~ 현재 (2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시의 의뢰로 효불효교지(경상북도기념물 제35호)에 대해 지난 2001년부터 금년 2003년까지 시굴조사 및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라시대의 석조문화재 중 흔치 않은 교량유적에 대한 성격을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효불효교(孝不孝橋, 일명 日精橋) 관련 문헌 사료는 《三國史記》 경덕왕조(景德王條)에, “경덕왕(景德王) 19년(760년)… 궁 남쪽 문천상(蚊川上)에 월정교(月淨橋)·춘양교(春陽橋)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일정교(日精橋)는 일명 춘양교(春陽橋)라고 하며, 옛날에 府의 동남쪽 문천상에 있고, 월정교는 府의 서남쪽 문천상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 동 다리는 교대 및 교각을 모두 대규모의 화강암을 다듬어서 만든 석교(石橋)로서 규모는 길이 최소 55m, 상판 너비 최소 12m, 교각높이가 약 5m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다리에는 모두 3개의 교각이 확인되었는데 유수 방향의 양단에 수압을 줄일 수 있도록 선수형(船首形)으로 만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규모는 각각 길이14.8×너비3.4m, 14.4×3.7m, 14.0×3.0m이다.
다리 교각 주변에는 교대와 교각에 사용하였던 1,300여점의 부재가 무너진 채 남아있음이 확인되어 교량의 복원에 필요한 많은 자료들을 제공할 뿐 만 아니라 복원이 추진될 경우 실제 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교량유구 이외에도 동편 교대지의 북쪽 월성 방향으로 폭 1.2~2.5m, 길이 110m의 석축과 이 석축의 축조와 관련이 있는 목주 19개가 2열로 남이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 석축은 교대지 동편의 제방 위에 잘 보호해야만 하는 중요 시설물이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유구라 할 수 있다.
조사기관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교각의 모양과 크기, 축조수법, 그리고 교대 날개벽 석축의 돌못 사용방법과 퇴물림식으로 쌓은 축조방법 등은 물론이고 석재의 색깔과 재질까지도 1985년에 이미 조사된 바 있는 월정교와 비슷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三國史記》 景德王 19年(A.D.760) 條에 보이는 춘양교春陽橋와 월정교月淨橋를 함께 가설하였다는 기록에 신빙성이 높으므로 이 교량지는 춘양교春陽橋의 별칭인 일정교日精橋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기고 있다.
연구소는 이번 자문위원회의 검토를 통해 유적의 보존 및 정비방안과 유적명의 변경 방안 및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방안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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