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조와 정조가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칠 만한 수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필자 생각에는 이 양반들은
세종 정도 수준은 안 되는 양반들로 본다.
부지런하고 영명한 사람들임은 분명하지만.
숙종 때는 그렇다 치고,
영조와 정조는 많은 부분이 닮았는데
특히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치고
말이 경연이지 경연때는 신하들한테는 대충 묻고
자기가 가르치는 것이 태반이었고
책을 낼 때마다 서문을 갖다 붙였는데
전부 도통道統 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임한 것이 태반이었다고 본다.
정조가 그 정도가 좀 심했기 때문에 영조는 상대적으로 좀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 양반도 만만찮은 양반이었다.
따지고 보면 숙종, 영조, 정조의 이러한 성정은
필자가 보기엔 전부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명성황후가 아니다, 현종비이다) 때문으로 보이는데
명성왕후가 한성깔했는데 그 성질머리가 정조 때까지 내려가 국정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이야기는 아니고,
이러한 영 정조대의 경연 때 보이는 모습,
틈만 나면 신하들을 가르치려하고
스스로를 도통의 전수자로 자임하려 했던 모습까지
북한의 수령을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다.
절대 권력자로서의 모습이야 전근대 군주야 다 가지고 있겠지만
선생 역까지 자임하는 건 그리 흔치 않은데
북한과 숙종-영조-정조대에 완성된 조선의 모습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 최종적인 결과물도 19세기 말 조선의 모습과
2024년 현재 북한의 모습을 보면
둘이 비슷해진 것도 필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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