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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관陵官으로 왕릉을 지키며 지내는 괴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은 없다. 한양 동쪽과 서쪽에 있는 여러 왕릉의 관리들은 밤낮으로 서로 모여서 장기바둑을 두거나 술을 추렴해 마시느라 시끌벅적한 집이 된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떠돈다. “각각의 능관이 새로 임명되어 내려오면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색목色目의 같고 다름을 능 입구 나뭇가지 끝에 걸어두고 재실齋室로 들어간다.” 관습과 형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겪은 두 왕릉의 참봉은 동쪽과 서쪽에 있는 여러 왕릉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랐다. 게다가 책 상자를 가지고 가 조용하고 운치 있게 지낼 수 있어 온갖 업무가 기한이 정해져 있어 마음이 편치 않은 지방 수령보다 나았다. (심노숭沈魯崇<1762∼1837>) 지음, 안대회·김보성 외 옮김 《자저실기自著實紀》, 휴머니스트, 2014)
(2014. 04. 06 22:34:05)
***
조선왕릉을 관리하는 공무원인 능참봉은 직급도 열라 낮았고, 당근 연봉도 짰지만, 대신 할 일이 없었다. 그 자리로 발령받으면 대부분 그래서 탱자탱자 열라 퍼마시고 놀았으니, 그 주된 무대가 제실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딩가딩가 예예예.
그런가 하면 간혹 이 기회를 빌려 열심히 고시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얼마나 좋은가?
저 심노숭 저작물은 발음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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