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경기대학교박물관 고고학연구실 이름으로 발간한 《한국고대문화연구》에 게재한 졸고 '당唐 고종高宗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예행 의식으로서의 취리산 회맹就利山會盟'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애착이 큰 글이다.
이건 내 기억에 아마도 신라사학회나 어딘가에서 발표한 글을 묵혀두고 있다가, 마침 경기대박물관 쪽에서 당시 경기대박물관장 이근수 교수 회갑 논문집을 준비한다 하면서, 글 한 편 달라 해서 수록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논문집 준비를 주도한 이는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출신 유태용 박사였다. 아마 이 무렵 유 박사는 경기대 교수직을 노렸던 듯하다. 그 일환으로 이 논문집도 준비했다고 안다.
연구업적이 시급한 이들이야 이런 일을 마다하겠지만, 나로선 그에서 자유로우니, 게재 매체와는 관계없이 아무 데나 주어도 상관없었다. 아마 200자 원고지로 200매에 달할 이 논문은 아마 그 이후, 지금은 충북대 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김영관 박사가 취리산 회맹 관련 다른 논문을 발표하면서이를 인용하지 않았더라면, 묵히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일단 김 박사 논문이 정식 학술지에 발표되고 나니, 이후 취리산 회맹 관련 글은 이 논문을 반드시 보게 되어 있고, 또 그에서 저 글이 인용되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논문이 나로서는 진흥왕 순수비 이래 봉선封禪과 관련해 심혈에 심혈을 기울인 다른 글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크다.
부제가 '7세기 중반 동아시아 국제질서, 그 기축基軸의 一탐구'이거니와, 나로선 소위 세계사, 혹은 동아시아 시각에서 취리산 회맹을 접근하고자 했다.
이 취리산 회맹에 대해서는 몇몇 전문연구가 있었지만, 나는 당 고종이 주도한 태산 봉선제에 초점을 맞추어 취리산 회맹은 그 미니 봉선이자 사전 예행 연습장임을 지적했다.
취리산 회맹에 대해 이런 시도는 없었다고 단언해도 좋다. 나는 소위 한국사라는 시각을 거부한다. 한국사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괴물로 본다. 한국사가 예수도 아닐진댄, 지 혼차 마스터베이션이나, 혹은 처녀생식으로 태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불교의 연기론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존재하기 위한 절대의 기반은 나 아닌 것들이다. 한국사가 성립가능하다 해도, 한국사가 성립하기 위한 절대의 조건은 한국사 아닌 것들이 규정한다. 내가 나임을 어찌 아는가? 나 아닌 타자의 발견에서 비롯한다.
한국사 혹은 신라사가 성립가능하다 해도, 나는 신라건 한국사건 그것을 한국이라는 영역에 가두어 두는 일을 단언코 거부한다. 이것이 작금 국내 학계에서 통용하는 무슨 국제관계 이런 시각과는 왕청나게 다르다. 그네들이 말하는 국제관계와 내가 말하는 세계사는 결이 다르다.
그것을 취리산 회맹에서 실험하고 싶었으니, 그런 실험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줄기차게 적용 중이다.
(2018. 1. 1)
***
문제의 논문 원문 전체는 아래 글에 첨부해 놓았으니 관심있는 이는 참고바란다.
당唐 고종高宗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예행 의식으로서의 취리산 회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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