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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어느 원로 문화인류학도 부음에 즈음하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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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착적 인류학' 모색한 강신표 명예교수 별세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 사회와 문화 진단을 평생의 과제로 삼아 연구해 문화인류학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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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분을 잘 모른다. 어찌하여 페이스북이 연결해 친구가 되었지만 유별나게 온라인에서 교유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다만 고인이 생전에 한양대서 교편을 잡았던지 이쪽 출신자들과 인연이 많은 내가 그리 얽힌 관계로 이리저리 연결됐다고 기억하며 덧붙여 나는 고인이 생전에 정리하는 글들을 흥미롭게 읽곤 했다는 말은 해둔다.

레비스트로스와의 인연이며 누구나 알 만한 현대사 문화계 인사들과 얽힌 사연은 그의 팔순 성상의 깊이가 녹록치 않음을 말해준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sns에서 보이는 그는 단아했다. 저처럼 특정 분야에 천착한 노인네한테서는 뭐랄까 갑갑함에 숨이 막히곤 하는데 내가 언뜻 언뜻 지켜본 그는 그와는 거리가 멀어 노인네가 상당한 무게중심을 잡고 있네 하는 그런 안정감이 있었다.


고 강신표 선생 페이스북 대문 캡처



또 대개 저 연배에 이르면 정치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곤 하는데 본인이라고 생각이 없겠냐만 그런데서 부러 초연해지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모습이 없어 존경스럽기도 했다.

건강이 안 좋은 듯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느닷없이 부고장으로 날아들었다. 어제 새벽인가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그의 계정에 그의 아드님이 부고를 올려놨더라.

해당 포스팅과 관련자료를 찾아 문화부 박상현 기자한테 그 새벽에 카톡으로 던져놨으니 잠이 깨면 챙겨서 부고기사를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억에 그때가 새벽 네시쯤..한데 메시지 넣자마자 읽음 표시가 뜬다. 으잉? 하필 오늘 숙직 중이란다.

저 부고기사가 비교적 일찍, 또 비교적 자세하게 작성된 까닭이다. 박기자가 이것저것 찾는다고 참 많이 애를 쓴 모양이다.

고인은 문화인류학이 전공이라 언론 관점에서 보면 이 분야가 참말로 나와바리 관점에선 어정쩡하기 짝이 없다. 저 인류학이 세계사 관점에서는 기라성을 방불하는 이른바 대가가 줄이어 출현했지만, 누가 저 분야를 전담하느냐는 전연 별개 문제라

엄밀히 말하면 전담기자가 없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고 외국이라 해서 사정이 다를 것도 없다.

전담기자가 없다는 게 귀찮음의 해방이라 행복일 수도 있겠지만 불행이다. 비극이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저 이름 학과가 고고미술사와 쟁투하다 인류학과로 독립한 서울대, 학과 이름 자체가 문화인류학인가인 한양대, 기타 목포대나 영남대인가가 인류학이라는 간판을 내건 데가 있기는 하지만 언론이라는 관점에선 인류학이 존재를 각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국내선 저 인류학이 민속학과 묘한 신경전까지 벌이는 형국이니 없는 집안끼리 농가묵기 싸움한다는 인상을 내가  받기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선 고인이 어떤 자리에 섰는지는 내가 기억에 없다.

저 문화인류학은 굳이 언론관점에서 따지자면 문화부 학술 아니면 문화재 전담기자 영역에 속하는데 나만 해도 이십년 저쪽 생활에서 정통 문화인류학 얘기는 관련 외국서적 번역에 따른 책 소개 말고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다.

언제인가 국립민속박물관장 공개채용에 서울대 인류학과 모교수가 응모해 소동이 인 일도 기억에 있다.

그 정도다.

그럼에도 나 역시 문화인류학은 소비했으니 내 세대 누구나 그랬듯이 한땐 레비스트로스 열렬한 애독자였고 말리노프스키는 요즘도 틈나면 손에 대며 사회학과 경계가 모호한 어네스트 겔러니 하는 인물들 역시 한때나마 세례를 받기도 했다.

짙은 인연은 아니었으나 이런저런 인연으로 친구가 된 강신표 선생 부고에 격발해 두서없는 몇 마디 초해봤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나보다 먼저 고인이 된 사람이 참말로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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