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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불과 같았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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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17 작성한 글임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뇐네 설득한다 좀 애를 먹었다.

문화재청에 섭섭함이 많은 듯 격정을 토로한다.

1937년생이니 올해 여든하나.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은 1964년 4월 행정주사보로 문화재관리국에 발을 디뎠다.

1999년 6월 국립도서관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력이 독특해 행정직으로 입사했다 학예직으로 전직하고 다시 이내 행정직으로 돌아왔다.


정재훈 국장과 더불어 한국문화재 행정의 초석을 다진 일등공신이다.

한사코 옛날 이야기 들어 뭐하냐 거부한 그였지만 강남역 주류성에서 만나자마자 필설을 토한다.


1966년 구자춘 제주도지사에 맞서 온 산이 표고버섯 농장을 변하기 직전 한라산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켜낸 일, 춘천 중도로 떠나려던 문화재연구실 발굴조사단을 급히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출현 현장으로 돌린 일화, 경부고속철 경주 통과를 분쇄한 일을 쏟아낸다.

일본 오사카 태생인 선생은 해방과 더불어 귀국 후 부산에 정착해 경남고 12회가 되니 기춘 대원군 김기춘이 동기요, 박희태는 일년 선배이고, 검찰총장 김기수와도 동기다. 

경남고라 해서 YS 시절엔 잘나갔다. 

부산시장 문정수는 친구라, 그의 시장 재임 시절엔 문화재관리국장으로서 문정수와 을숙도 철새도래지로 한판 붙었는데 "그깟 새가 사람보다 중요하냐"는 공격에, "야 이 사람아 새가 살지 못하는 곳에 사람도 못산다"는 논리로 맞대응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그는 성질이 불 같았다.

학예직으론 이종철 전 국립민속박물관장, 행정직으론 노태섭 전 노태섭 문화재청장 같아 그 둘을 짬뽕하면 정 국장이란 괴물이 탄생한다.

연세대 사학과 58학번인 그의 동창으로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가 있거니와, 이 교수는 그때도 뻥이 심했느냐 물으니 웃고 만다. 으하하 사람 뒷담화가 젤로 재밌다. 

당신 스스로는 (문화재관리국 기준일 듯한데) 학예사 1호라고 하시는 듯한데.....1964년 학예직 전직 당시에 이미 학예사가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아마 이호관 선생도 개중 한분) 아닌 듯하다. 다만 선배들인 이호관 강인구 선생은 임시직으로 들어와 있었다고 하니, 학예사 임용시점으로 보면 좀 더 따져얄 듯하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감은사지 동탑 해체보수할 때 겪어보니 앞뒤없이 성질 디게 더럽더만"(이채경), "사리가 분명하고 의견이 뚜렷했던 것으로 기억나는 분. 경주고속철노선 돌릴 때가 생각나네요"(양윤식), "내가 82년도에 문화재관리국 입사했을 때 문화재1과장을 하셨는데 프라이드와 자부심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습니다^^"(윤남순), "정 국장님. 참 열심히 사신 분이라 기억되요. 성격도 급하시고, 말도 빠르시고... 한번 말씀을 시작하면 끝이 없구요... 일에서는 소신있고, 열정 이 많으셨던 분으로 기억됩니다"(문영빈)과 같은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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