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것들도 비슷하겠지만, 근대에 들어 한국사의 여러 분야에 외국인이 먼저 손을 대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다수는 일본인 또는 서양인이었다.
한국미술사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독일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이분은 신부였다가 사퇴하고 결혼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나 일본인 세키노 타다시의 연구를 그 효시로 보곤 한다.
물론 시대와 역량의 한계가 뚜렷하지만, 앞으로 풍성해질 한국미술사 연구의 시작이란 의미는 충분히 가진다고 생각한다.
여기 소개하는 에블린 맥퀸 Evelyn McCune(1907~2012)의 《한국미술사 The Arts of Korea》(직역하면 '한국의 예술'쯤 되겠지만, 흔히 '한국미술사'라고 하는 모양이다)도 그런 초기 연구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책이다.
2. 저자 에블린 맥퀸은 아버지가 선교사여서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혼도 같은 처지의 소꿉친구와 했으며(시아버지 되는 분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상당한 자취를 남긴 윤산온尹山溫 목사고, 남편은 맥퀸ㅡ라이샤워 한국어표기법을 만든 조지 맥퀸이다) 자라서도 쭉 한국 관련 사무와 연구에 매진했다. 그런 만큼 한국문화에 익숙했고, 한국미술에도 관심이 깊었다.
3. 에블린 맥퀸이 1962년 일본에서 인쇄해 펴낸 이 영문판 <한국미술사>는 한국의 미술을 내핍耐乏에서 발생한 ‘선’과 ‘형’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언뜻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말한 "빈곤의 보호"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애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한국미술이 중국의 영향권에 있으면서도 엄연히 중국과는 차이가 있으며, 특히 일본은 한국 문화의 모방자라고 보아 한국의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국립박물관 초대 관장인 김재원 박사가 이 책의 출간을 여러 모로 도와주고 서문도 쓰는데, 결과물이 좀 불만스러웠던 듯 나중에 자서전에서 비판하는 대목을 남긴다.
4. 이 <한국미술사> 1962년 초판은 아마 어느 미군부대 도서실에 있다가 흘러나온 모양이다. 하드커버 표지에는 테이프를 붙였던 자국이 있고 표지 안쪽엔 미군 도서실 장서인이 선명하다.
그 위로 에블린 맥퀸의 친필서명과 헌사獻詞가 남아있다. 뭐라고 쓰셨을까?
With special regards
because of long years
in Korea -
Evelyn McCune
한국에 오래 있었기에, 특별히 안부를 전하며 -
에블린 맥퀸
(필기체 해독에 도움을 주신 박물관 교육과 W선생님께 머리숙여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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