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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종손이나 명가의 직계 후예를 만나면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곤 한다. 그들의 어깨에 얹힌 자부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대강이나마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상북도에서도 내로라하는 종가의 따님이 썼다. 이제 그렇지 않으리라는 걸 모두 알면서도, 일반인에게 종가 따님의 이미지란 "노란 저고리 빨간 비단치마 입고 다소곳이 앉은 아리따운 별당아씨"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건 그야말로 편견임을 깨닫게 된다.
편견 - 맞다. 이 책의 저자가 적어내려가는 글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편견'에 평생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투쟁기다.
글 곳곳에서 저자는 딸, 아내,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편견을 담담히 그러나 통렬하게 꾸짖는다.
고생과 눈물에 얼룩졌으면서도 희망과 새로움이 번뜩이는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자와 동기화해서 울고 웃고, 시간을 넘어 그때 그 시절 천태만상과 '애증의 평행선'을 새긴 선각화를 만나며 같이 화를 내거나 미소를 짓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라고 자신의 책을 소개했다. 그 말처럼, 나도 이 책의 내용(특히 몇몇 부분)이 현재진행형으로 남지 않고 근현대사의 지나간 한자락을 증언하는 사료로만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글을 감사히 잘 읽었다.
내 감상이 저자의 글에 한참 못 미쳐 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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