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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한다. 이 경우 남색이란 남자 호모를 말한다.
《화랑세기》 얘기다. 이 화랑세기에는 남색이 적지 않게 나온다. 특히 법흥왕은 여자도 많았지만 남자 애인도 적지 않았다.
이 남색을 두고 화랑세기 진본론자이기는 마찬가지인 이종욱 전 서강대 총장과 나는 적지 않은 충돌을 일으켰다.
이종욱 선생은 단순한 총신寵臣으로 봤고, 나는 호모라고 봤다.
하도 열받아서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에서 호모 얘기 열라리 했다. 이종욱 선생과 내가 금이 간 여러 요인 중 작은 것에 해당한다.
졸저 출간 이후 《고려사》를 통독할 일이 있었다. 그 긴 《고려사》를 통독하다 보니 적지 않은 왕의 남자 애인이 등장했다. 심지어 그 남자 애인들의 족적을 보니 완연히 신라시대 화랑의 복사판이었다.
그리고 중국사를 통괄하니 중국 황제 역시 남자 애인이 없는 놈이 없다시피 했다. (2016. 1. 6)
***
이 동성애 homosexuality 문제는 한국역사학에서는 금기어에 가까워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
이유가 짚이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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