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연천 군남대 예정지 발굴현장의 까만머리 back to 2010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5.
반응형



2010년 3월 25일이 아닌가 한다.

연천 홍수조절용 군남댐 건설 예정지 발굴현장이다.

수자원공사 의뢰로 고려문화재연구원이 발굴했을 것이다.




병모 선생이 중앙일보 이경희를 비롯한 일군의 기자를 앞세워 놓고 열심히 발굴성과를 설명하지만,

나는 혼자 놀았다.

왜?




나는 대가大家라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저 발굴과 관련한 내 보도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일부는 연합뉴스가 제공하며 일부는 연합뉴스에는 안 보이고 그것을 인용한 다른 보도에 보인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뜻일 터다. 군남댐 유적이 출현한 2009~2010년 무렵만 해도 이미 기자 김태식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당시 이미 나는 문화재업계 기자 생활 10년을 넘어서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환멸 같은 것들이 이는 시대였다고 기억한다.

그때 떠났어야 한다. 기자건 혹은 문화재건 말이다. 

 

연천 임진강변서 20m 呂자형 주거지 발견
연합뉴스 기사전송 2009-06-16 09:02 최종수정 2009-06-16 09:35

군남 홍수조절지 구간서 확인
(연천=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기 연천군 임진강변의 충적지대에서 길이 20m, 폭 10m에 달하는 초대형 평면 '呂'(려)자형 주거지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원장 김병모)은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건설단이 총예산 621억원을 들여 오는 2011년 12월 준공 예정인 '군남 홍수조절지' 구간 중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을 시굴조사한 결과 이런 규모의 呂자형 주거지를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측량 결과 이 주거지는 규모가 장축(길이) 18.9m에 단축(폭) 9.4m로 나타났으나 건물 본체로 통하는 출입구 시설이 채 전모를 드러내지 않아 정밀 발굴이 이뤄지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주거지 내부에서는 목탄과 불길을 먹은 흙이 확인됐고, 벽체 흔적을 따라서는 불을 만나 숯으로 변한 판재의 존재도 드러났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숫돌과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 파편이 출토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呂자형 주거지 중에서는 경기 포천 자작리 유적에서 확인한 길이 23m짜리가 현존 최대인 것으로 기록돼있으며, 이번 연천 주거지 또한 이에 맞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呂자형 주거지란 공중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그 평면 형태가 마치 '呂'라는 한자를 닮았다고 해 이런 이름을 얻었으며 건물 본체로 들어가는 남쪽 벽면에 평면 방형인 출입시설을 별도로 마련한 구조를 갖는다.

한강과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기원전후 무렵에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이 주거지에서는 단단하게 구운 바탕에 별다른 무늬를 넣지 않은 경질무문토기와 토기 표면에 무엇인가를 두들겨 무늬를 새긴 타날문토기(打捺紋土器)가 주로 출토된다.

taeshik@yna.co.kr
(끝)

 

 

민통선 임진강변서 2천년전 마을유적 발굴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0-03-25 09:22

군남홍수조절지 예정지, 고구려 석실분 9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에서 2천년 전 대규모 마을유적과 고구려 석실분이 무리를 지어 발굴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원장 김병모)은 한국수자원공사 의뢰로 지난해 3월 이후 현재까지 군남홍수조절지 수몰 예정지에 포함된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 임진강변 평탄 충적지대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와 초기 삼국시대 주거지 74기, 고구려 석실분 9기 및 경작 유구와 수혈 유구(성격 미상의 구덩이) 131기 등 총 218기에 달하는 각종 유구(遺構)를 확인했다고 25일 말했다.

이 중 한강과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력기원 전후 무렵 한반도 중부지방 일대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평면 呂ㆍ凸자형 주거지가 무려 65곳이 확인됨으로써 당시 이곳에는 대규모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아가 이들 呂ㆍ凸자형 주거지 대부분에서는 여타 지역 같은 유형의 주거지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쪽 벽면을 따라 'ㄱ'자형 구들 시설이 드러나고, 벽체 및 지붕시설까지 불타 내려앉은 채로 고스란히 확인됐다.

27호라고 명명한 주거지는 길이 20.6m, 너비 9.7m, 깊이 0.99m에 이르러 지금까지 발견된 呂자형 주거지로는 초대형급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물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양대 토기류인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와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를 비롯해 철도자(칼), 철부(도끼) 등이 있다.

조사단은 "마을 규모와 입지로 볼 때 이 일대는 초기삼국시대 임진강 유역 세력의 거점마을로 추정되어 경기북부지역 초기역사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고구려 전통이 강한 삼국시대 석실분(石室墳)은 구릉지대 3개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 3기씩 군집을 이루는 형태로 발견됐다.

이들 석실분은 바깥에서 무덤 내부로 통하는 길을 석실 전면 오른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마련한 이른바 우편재 횡혈식(右偏在橫穴式)이며, 석실은 대부분 장방형에 규모는 대략 길이, 너비, 높이 각각 2.5m×1.4cm×1.98cm 안팎으로 나타났다.

묘실 벽면은 깬돌을 이용해 비교적 정연하게 쌓아 올렸으며, 무덤길로 통하는 길인 연도는 안쪽 묘실에서부터 외부를 향해 약간의 오름 경사식으로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고분에서는 관정(널에 쓴 쇠못)과 관고리(목관에 단 고리)가 수습됐다.

이 중 8호 석실분에서는 남쪽 벽에 가까운 석실 바닥에서 겉면이 반질반질하고 검은색을 띠는 항아리형 토기인 흑색마연호(黑色磨硏壺) 1점과 금제구슬, 유리제구슬, 은제팔찌 1쌍이 출토됐고, 2호 석실분에서는 금제구슬, 유리제구슬, 은제팔찌, 철제품 등이 수습됐다.

조사단은 출토유물 중 관고리가 백제 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면, 고구려 지역에서만 보이는 형태로, 원형인 고리에 화판형(꽃술 형태) 좌판으로 구성된 점이라든가, 고분이 강변 구릉지를 따라 몇 기씩 무리를 지은 점 등으로 볼 때, "고구려 석실분이 확실하며, 만든 시기는 빠르면 5세기 후반 무렵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 석실분은 고분 하나에 두 사람씩 매장된 것으로 보아 부부를 함께 묻은 묘로 추정되며, 나란히 조성된 각 3기의 고분은 가족 또는 가까운 혈연관계의 무덤군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아울러 조사단은 "이번 발굴성과는 고구려 장수왕(재위 413~491)의 지속적인 남진정책에 따라 임진강 유역이 일정기간 동안 고구려의 실효적인 지배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라면서 "만약 임진강유역이 고구려의 남진을 위한 군사기지 기능만을 했다면 귀족계층의 고분이 9기나 축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한 지역에서 고구려, 혹은 고구려계 석실분은 용인 보정리와 판교 신도시에서 최근 확인된 적이 있다.

taeshik@yna.co.kr
(끝)

 

수몰위기 군남댐 고구려고분 어쩌나
송고시간 2010-03-25 17:37  
<수몰위기 군남댐 고구려고분 어쩌나>2천년전 마을유적 포함, 보존문제 대두

https://www.yna.co.kr/view/AKR20100325192300005

 

<수몰위기 군남댐 고구려고분 어쩌나> | 연합뉴스

<수몰위기 군남댐 고구려고분 어쩌나> 2천년전 마을유적 포함, 보존문제 대두

www.yna.co.kr

 

 

군남댐 예정지서 '제철 마을'도 발굴
송고시간 2010-05-06 09:38  
군남댐 예정지서 '제철 마을'도 발굴凸자형 주거지 20기, 제철 유물 다수 수습

https://www.yna.co.kr/view/AKR20100506056100005

 

군남댐 예정지서 '제철 마을'도 발굴 | 연합뉴스

군남댐 예정지서 '제철 마을'도 발굴 凸자형 주거지 20기, 제철 유물 다수 수습

www.yna.co.kr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