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페친 박진우 선생님 포스팅을 보다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싶어하는데, 성균관 근처에서 파는 술은 영 맛이 떨어지니 염치없지만 댁에서 담근 술을 한 동이 걸러서 보내달라는 옛 간찰 속 이야기였다.
오죽 아버님이 술을 좋아하셨으면...그리고 아들이 얼마나 효성스러웠으면(어쩌면 아버님이 빨리 술 좀 받아오라고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나) 이런 간찰을 써서 보냈겠는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성균관 술맛 얘기를 했을까? 그 간찰을 쓴 이만상(1622-1645)이란 분이 뉘신지 알고 보니 이해가 간다.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 중기 한문 4대가 중 하나로 꼽히는 월사 이정구(1564-1635)요,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백주 이명한(1595-1645)이다.
월사는 성균관과는 소리치면 들릴 정도로 가까운, 지금의 혜화역 근처에 살았다. 월사의 아들 백주도 그 집에서 살았다면, 굳이 성균관 근처 가게 얘기를 한 이유를 알 만 하다. 그리고 이만상 이 분은 아버지 병구완을 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상을 치르다가 돌아가셨다. 부친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인물이었다.
*** 문제의 박진우 선생 글은 아래와 같다.
<염치 불구하고 빈 술동이를 보냅니다.>
옛 편지 글을 읽다보면 작은 선물 하나에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틀에 박힌, 상투적인 표현일 수 도 있느나 부채 하나 말린 생선 몇 마리에도 감사함을 표현하는 옛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만상(1622-?)의 편지를 임서하였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너무 드시고 싶어한다. 근처 술집의 술 맛은 형편없으니, 아직 익지는 않았겠지만 귀댁의 술을 한 동이 걸러주었으면 한다. 빈 동이를 염치 불구하고 보낸다.'
손을 뻗으면 상품을 바로 교환할 수 있는 요즘. 술 한 동이를 얻기 위해서 간절한 편지를 쓰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해보입니다. 편의점이나 슈퍼에 그득한 술들을 보면 옛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화가 이중섭도 어린 아들에게 자전거 한 대를 사주고 싶어했는데, 끝내 돈을 구하지 못해서 못 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나의 물건에 대한 옛 사람들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너무 풍족하게 살다보니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과 감사함이 너무 없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진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면서 남은 한 해 잘 보내겠습니다.
글 보시는 분들도 하수상한 시기이지만 평온한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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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 씁쓸하고 가을 풀 슬픈데
가슴 가득 이별의 슬픔 해는 지려하네
꽃 피고 버들잎 푸른 서쪽 교외의 길
내년 봄 서로의 만남은 어느 곳을 기약할까
가친께서 술 생각이 간절하셔서 좋은 술 한 동이를 간절하게 얻고 싶은데, 성균관 옆 가게는 술 맛이 나쁘니 영감 댁의 새로 빚은 술이 미처 익지 않았어도 한 동이를 먼더 걸러주시면, 그 고마움과 행복이 어떠하겠습니까. 절박하여 감히 고하며 빈 동이도 보냅니다.
서생 만상 올림
<근묵義> 4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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